어떤 사이

어떤 사이 07

Next,

린당



상혁아 안달아? 걱정스레 묻는 인성의 목소리에 상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빨간 입술을 붕어같이 모으고 참 열심히 오물거리는 상혁의 손에는 유명 브랜드의 초코과자가 들려 있었다. 입도 작으면서 저걸 전부 먹는다고 입안에 있는 걸 삼키기도 전에 다시 초코 과자를 한 입 물더니 부스러기를 입가에 잔뜩 묻히고 인성을 향해 베시시 웃었다. 아 예뻐,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올라가는 광대를 주체하지 못한 인성이 상혁의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위에 쪽쪽 입을 맞추고는 여기 다 묻었다- 하면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가로로 긴 상혁의 아몬드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바야흐로 디저트 카페의 대 명절 발렌타인데이였다.


***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해 재윤이 만든 초코 마카롱과 케이크로 카페 ‘그라치오소’는 대성황이었다. 카페 근방에는 여고가 두 개나 있는 데다 이미 디저트 맛 집으로 입소문이 자자해 몇 차례 SNS에도 지역 맛 집으로 태그가 오른 적이 있었다. 덕분에 연인들의 날이라는 무슨무슨 데이에는 오히려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해 본적 없다며 투덜거리던 영빈과 재윤의 설움을 오늘에서야 십분 이해하게 된 인성이었다.


“주문하신 케이크 포장 나왔습니다!”

“오늘의 케이크는 초코 모찌랑 피넛이 들어간 딥 초코가 있습니다. 두 개 다 포장해 드릴까요?”


카운터에서 인성이 받은 오더를 영빈과 상혁이 받아 확인하고 쇼 케이스와 베이킹 룸을 왔다 갔다 하며 포장이 완성된 디저트 상자들을 픽업대로 올렸다. 날이 날이니만큼 음료보다는 디저트가 더 성황이라 임시로 손님응대를 맡게 된 영빈이 상혁과 분주한 사이에 인성은 다른 일로 조금 곤란을 겪고 있었다.


카페 ‘그라치오소’가 유명세를 탄 건 비단 디저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반듯한 외모에 모델 같은 기럭지를 가진 세 남자와 상냥한 미소를 곁들인 달콤 쌉싸름한 디저트. 그리고 부드러운 커피. 거기다 두 개의 여고가 마주보는 길목이라 당연히 여성 손님들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으레껏 이렇게 무슨무슨 데이가 오면 평소 단골로 찾아오던 손님들 중에는 수줍수줍한 모드로 다가와 호시탐탐 고백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다.


“저기 사장 오빠!”

“네-, 주문하시겠습니까?”

“주문해서 오빠 주면 오빠가 먹어요?”

“죄송합니다. 손님, 규정상 손님에게 사적인 물품은 전달 받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 봤다고 오빠라니, 대뜸 터져 나오는 발랄한 오빠! 하는 소리에 쇼케이스에서 케이크를 꺼내던 상혁의 시선이 인성에게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반면에 제게로 시선을 주목시킨 이 당돌한 여고생은 인성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삐죽 입술을 빼물었다. 오늘로 이런 손님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나마도 인성에게 온 것만 세 번째지 저기 커피 오빠랑 저 안 쪽에 얼굴도 잘 안 비춰주는 디저트 오빠에게 온 것 까지 합치면 벌써 열은 넘었다. 사실 본격 영업용 미소를 장착한 인성에게 이런 상황들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올 해부터 시작된 익숙하지 않은 인물을 향한 고백 러쉬는 좀 난감하기도 했다.


“저기요. 사장님.”

“네, 고객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혹시 여기 알바생 이름이 뭐예요?”


그런 건 왜 물으세요? 우리 상혁이 이름을 알아서 뭐하시게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뾰족 거리는 말들을 고르게 다듬고 다듬어 어색한 미소를 입 꼬리에 달고 무슨 용건 때문에 그러시나요, 손님? 하고 물으면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보려면 이름이라도 알아야죠! 저 여기 알바생 때문에 단골 됐어요! 하고 대답했다. 어쩐지 몇 주 전부터 익숙하게 보이는 얼굴이다 했다. 저를 비롯한 카페 직원들을 향한 고백은 수차례 받아왔고 사실상 아무 타격감이 없어야 하는 그저 그런 헤프닝 중에 하나였는데 이 상황에 상혁이 거론 되는 순간부터 표정 관리가 무너진다는 게 문제였다.


제게 끈질기게 상혁의 이름과 나이를 묻는 여고생은 짙은 갈색 똑 단발이 단정했고 하얀 피부에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반짝 거렸다. 몸에 맞게 잘 줄여진 교복은 특별하게 날티가 나지도 않았고 위로 걸쳐 입은 군청색의 떡볶이 코트는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뒤에 학생을 따라온 친구 두 명이 파이팅하며 주먹을 쥐고 귀엽게 까르르 거리는 걸 보면 정말 고백이라도 하려고 온 걸까 싶어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쟤 예뻐, 예쁜 애가 우리 상혁이가 예쁜걸 알아. 예쁜 애는 예쁜 애를 알아보는 걸까. 거기다 저 코트...


“형, 다음 주문 없어요?”

“어, 아직...”


내가 이상혁한테 사준 떡볶이 코트랑 똑같은 거야. 마침내 인성의 해피 스마일 영업용 미소가 무너졌다. 시무룩하게 내려간 입 꼬리를 하고 추가 주문지를 받으러 온 상혁을 돌아보는 인성에 상혁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손님들에겐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물으며 눈썹을 찌푸린 상혁에 작게 고개를 도리도리하고 다시 힘을 내서 입 꼬리를 가까스로 올린 인성이 여전히 카운터 앞을 차지한 학생들에게 말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사적인 질문은 받을 수가 없어서요. 뒤에 손님 분들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문 먼저 도와드려도 될까요?”


적절했다. 적절한 대응이었어. 김인성 잘했다. 인성이 속으로 자축의 박수를 쟉쟉 쳤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고 다행이도 유명 디저트 맛집 카페 그라치오소는 학생들의 뒤로 몇 안 되는 대기 손님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학생들도 시간을 더 끌기는 민망했는지 물러서려다 마침 주문을 받으려고 서 있는 상혁을 향해 대놓고 시선을 보냈다. 대충 친구 두 명에게 먹고 싶은 거 골라! 하고 소리친 단발머리 소녀가 저기요! 하고 상혁에게 말을 거는데 인성은 제 앞에서 디저트 메뉴를 끝도 없이 고르는 다른 소녀들 때문에 눈은 포스기에 가 있었지만 온 정신과 귀가 상혁을 향해 열려 있었다.


“혹시 이름이 뭐예요?”

“네?”

“이름이요, 나이는요?”


깜빡깜빡 동그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 상혁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입을 다물고 있자 소녀가 기어코 상혁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흘긋 보고는 이름이 이상혁이예요? 하고 물었다. 영문을 모르겠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상혁이 뒤늦게 아, 네. 하고 대답하자 소녀는 나이는요? 하면서 질문을 이었다. 대화를 막으려는 듯 불쑥 튀어나와 상혁과 제 사이를 가로 막고 결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손님? 하는 인성을 향해 끼어들지 말라는 듯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빠르게 건네는 손에 인성이 다시 입술을 꼭 물고 포스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스무 살이요. 파릇파릇한 상혁의 나이 옆에 오! 저는 열아홉인데! 하는 소녀의 더 파릇파릇한 나이가 붙었다. 삐죽, 참지 못하고 울상을 한 채 입술을 툭 내밀었던 인성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손을 놀려 주문지가 적힌 영수증을 상혁에게 건넸다. 상혁아 이거 주문, 빨리. 하고 재촉하듯 아이를 홀로 밀어내자 아쉽다는 듯 발을 동동 거리는 소녀에게 인성이 불쑥 다가가 고개를 숙여 말했다.


“쟤 애인 있어. 엄청 예쁜.”

“네?”

“연상에 돈도 많아.”

“헐...”


첫사랑을 꿈꾸는 소녀의 귓가에 질투심에 불 타 오른 스물여덟 성인 남성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러니까 쟨 꿈도 꾸지 마세요, 손님.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저를 망연자실의 눈으로 응시하는 소녀의 어깨를 탁탁 털어준 인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다음 손님에게 세상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주문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오늘 김인성은 단골손님 한 명을 잃고 사랑을 지켰다. 아 일기에 기록해야 할 뿌듯한 일이야. 부족한 비품을 챙기러 창고를 가는 길이었던 상혁이 그 모습을 전부 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인성은 뿌듯한 마음으로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주문을 빙자해 상혁의 연락처를 묻는 손님들에게 초지일관 우리 알바생은 되게 예쁘고 돈 많은 연상 애인이 있다며 응대했다.


근데 거짓말은 아니잖아. 나는 엄마의 예쁜 아들이고 이상혁보다 연상이고 돈도 적당히 많으니까. 상혁아 형은 카드 안 써. 현금만 써.


***


온 몸에서 단 내가 풍길 정도로 고단했던 하루였다. 인성은 마지막 손님을 보내며 마감 시간 10시에 맞춰 칼 같이 카페 출입문의 팻말을 ‘CLOSE’로 돌렸다. 이제야 베이킹 룸을 빠져나온 재윤과 오늘 하루 동안 음료, 디저트 투잡을 뛰느라 정신이 없었던 영빈에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데이트를 하라며 선심을 쓴 다는 듯 말했다.


마감은 어쩌게? 묻는 영빈에게 상혁이랑 둘이 하지 뭐, 내가 사장인데 어쩌겠어. 우린 여기서 데이트 할게. 쿨하게 답한 인성이 미안한지 자꾸만 사양하려는 영빈 몰래 재윤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보내줄 때 가라, 이런 날 흔치 않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인성에게 그럼 감사합니다! 하고 먼저 선수를 친 재윤이 영빈을 탈의실로 끌고 들어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 사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막 끝냈던 상혁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홀을 둘러보며 어? 형들은 다 어디 갔어요? 하고 묻는 바람에 인성은 좀 미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상혁아 미안, 둘 다 내가 그냥 퇴근 시켜 버렸어.”

“아, 오늘 마감은 형이랑 나랑 둘이?”

“응, 둘이.”


발렌타인데이잖아. 그래도 데이트는 하게 해 줘야지. 하고 말하면서 혹시 기분이 상했을까 싶어 상혁의 눈치를 살살 본 인성이 덤덤하게 홀을 정리하며 바닥을 닦으려는 듯 마대자루를 든 상혁에게 이리 오라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왜요? 하고 묻는 순진한 얼굴을 끌어다 제 앞에 앉히고 잠깐만 기다려, 하자 상혁이 얌전히 테이블에 앉아 매장을 돌아다니는 인성을 눈으로 쫒았다. 매장 불을 홀 가운데만 남긴 채 톡톡 끄고 상혁의 손에서 마대자루를 빼앗아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인성이 블라인드까지 전부 내리고 혼자 나가 테라스의 어닝까지 정리한 뒤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어리둥절한 상혁의 앞으로 돌아와 뒤춤으로 언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종이 백 하나를 내미는 표정이 기분이 좋은 듯 입 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어 상혁은 저도 모르게 인성을 따라 웃었다.


“청소는 내일 하자. 그거 풀어 봐.”

“이게 뭔데요?”

“말했잖아. 오늘 발렌타인데이라고. 오늘은 연인들의 날이고, 우리도 연인인데 상혁아.”

“아...”


연애, 뭐 그런 걸 해 봤어야 이런 것도 챙길 줄을 알지. 무슨 날이다 하면 바빠지는 카페 일에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건 챙길 생각을 못했다는 듯 상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인성이 내민 종이 가방에는 며칠 전 같이 티비를 보다가 스치듯 우와 저런 것도 맛있겠다- 하고 말했던 유명 제과 브랜드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헐, 설마 초콜릿이예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상혁에게 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열어봐 하고 재촉했다.


“아, 형. 저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쉽사리 종이가방을 풀어 보지도 못하고 꼼질꼼질 손가락을 괴롭히는 상혁의 손을 끌어와 손 끝에 쪽쪽 입을 맞춘 인성이 너는 그동안 베이킹 연습한다고 나한테 엄청 줬잖아. 이건 그 답례도 되는 거야. 얼른 열어 봐. 응? 하고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마지막 초코 케이크 하나 정도는 남겨 놓을 걸. 볼에 바람을 불어 빵빵하게 만들었다가 또 홀쭉하게 만들었다가 안절부절 하던 상혁이 인성의 입술이 닿아 따뜻한 손끝을 오므리며 종이가방을 풀어냈다. 깔끔한 금색 로고가 박힌 제과점의 하얀 포장박스가 나오자 인성은 이거 재윤이 몰래 숨겨 놓는다고 혼났다며 우는 얼굴을 했다. 하긴, 디저트 카페 사장이 다른 브랜드 디저트를 선물로 준다는 것도 좀 웃기다며 상혁이 알만하다는 듯 웃었다.


분홍색 리본이 묶여 있는 끄트머리 포장을 풀리지 않게 손가락으로 쭉 밀어 빼낸 상혁이 상자를 열면서 오오- 하고 작게 감탄했다. 티비에서 보던 그대로지? 엄청 맛있겠지? 응? 인성은 그 작은 소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아예 상혁의 옆으로 옮겨 신이 난 듯 제가 먼저 커다란 초코칩이 쿡쿡 박힌 초코 쿠키를 들어 상혁의 입 앞으로 대령했다. 잘 구워 짙은 갈색을 띠는 초코 쿠키는 버터 냄새가 달콤하고 반죽이 꾸덕해 보여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얼른 먹어 봐 상혁아.”

“잠깐, 나 이거 먹기 전에 물어 볼 거 있어요.”

“응?”


“형 오늘 초콜릿 몇 개나 받았어요?”


“어?”


갑자기 분위기 취조실? 기분 좋은 얼굴로 초코과자를 향해 입을 벌렸던 상혁은 번뜩 뭔가 떠오른 듯 과자를 들고 있는 인성의 손을 뒤로 물리며 큰 눈으로 인성을 노려봤다. 초콜릿? 나 하나도 안 받았는데? 네가 안 주는데 내가 누구 초콜릿을 받아 상혁아... 귀가 축 늘어진 대형견 마냥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은 인성이 낑낑거리며 상혁의 어깨에 제 얼굴을 부볐다. 초콜릿 준다는 사람들 전부 내쳤어 진짜루, 형 막 헤픈 사람 아니야 상혁아.


아니이... 나 오늘 몇 번이나 봤는데. 카운터에서 손님들이 형한테 막... 그러는 거. 막 귓속말도 하고! 아까 손님한테 카운터에서 따로 나와서 또 뭐라고 하고 막, 그랬잖아요! 내가 나한테만 친절하고 다정 하라고 했잖아! 꿍얼꿍얼 인성의 불쌍한 표정에 버럭 화를 냈다가도 누그러져 성질을 내다 만 상혁이 제게 치근대는 인성의 어깨를 밀어내고는 성난 눈썹을 삐죽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애교 부리지 마요! 자기 딴에는 호통을 친다고 치는 건데 그게 인성의 눈에는 깡깡 거리는 아기 강아지보다 귀여우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애기야, 상혁아. 형이 누구한테 귓속말을 하고 누구한테 초콜릿을 받아? 응?”

“아까 막 내 이름 물어 본 사람이랑, 내가 다 봤어요!”


아, 그 이상혁한테 관심 있다던 열아홉 단발머리 걔? 너랑 커플 코트 걔? 상혁의 말에 잊고 있던 오늘의 경계대상 넘버원이 떠오른 인성이 휙 상혁과 거리를 벌리며 이번에는 제가 더 무서운 표정으로 제 손에 들려 있던 초코과자를 내려놓고 상혁의 뺨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아 뭐예요! 하고 쫑알거리는 상혁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망설임 없이 한 입에 물고는 쪽 빨자 헉- 숨을 들이쉬며 인성의 손목을 잡고 숨을 멈춘 상혁이 큰 눈을 깜빡였다.


“걔가 예뻐?”

“뭐요?”

“걔가 너 좋데 상혁아.”

“...누가 누굴...”

“나보고 너 몇 살이냐고 물어 봤는데 나 진짜 눈물 날 뻔했어.”


인성의 커다란 손바닥에 얼굴이 담겨 턱이 들린 상혁이 잠시 상황 파악을 하려고 눈동자를 굴리다가 인성의 질투심 가득한 칭얼거림에 꿀꺽 침을 삼켰다. 뻣뻣하게 늘어난 상혁의 목에서 목울대가 커다랗게 울렁거리자 뺨과 턱 언저리를 감싸고 있던 인성의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그래서 그렇게 입 꼬리가 내려갔었구나. 주문지를 가지러 갔다가 마주한 초면의 인성이 떠올라 상혁이 뺨을 붉혔다. 아, 그니까 그게 형이 아니라 나한테? 하고 중얼거리자 듣기 싫다는 듯 다시 상혁의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추던 인성이 얼굴을 감쌌던 손으로 상혁의 뒤통수와 허리를 감아 제게 몸을 바짝 끌어왔다.


쪽쪽 잘게 부서지던 입맞춤이 춥- 길게 아랫입술을 물고 진득하게 빠는 형태로 변하자 어깨를 부르르 떤 상혁이 두 손을 허공에서 잼잼 하다가 얌전히 인성의 가슴팍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형 화났어요? 잠깐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눈을 뜬 상혁이 묻자 인성이 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걸로 그렇다는 답을 대신하며 상혁아 눈감아. 하고 작게 말했다.



침실을 함께 쓰기로 하고 둘은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맞췄다. 첫 키스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상혁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도대체 몇 번의 키스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 입술이 떨어 질만 하면 붙고 떨어 질만 하면 붙는 바람에 상혁은 제게 붙어 오는 인성을 밀어내며 형 원래 키스가 이렇게 오래 하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가 인성이 청량하게 웃는 소리에 얼굴을 붉힌 전적이 있었다.


귓가에 종이 울리고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게 첫 키스라는 허울 좋은 경험담들은 전부 상혁과는 거리가 먼 것 들이었다. 처음? 아아 그냥 정신이 없었다. 이상혁의 첫 키스는 그냥 김인성 맛이었다.


처음 입술을 맞대고 목석처럼 굳어버린 상혁이 귀엽다며 인성은 온 얼굴에 침 범벅이 되도록 뽀뽀를 날려댔고 으앙- 아기처럼 얼굴을 찌푸리는 상혁의 입안으로 혀를 넣어 정신이 쏙 빠지도록 입 안에서 상혁의 혀를 굴려먹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다더니 이걸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상혁을 아주 물고 빨고 만지작거리는 통에 제게 도둑놈이 어쩌고 8살 차이가 어쩌고 했던 그 사람이 김인성이 맞나 싶었다.


“상혁아 형 앞에 두고 무슨 생각해.”

“형 생각 하는 거니까 질투 좀 그만해요.”

“상혁아 형이랑 키스 할 땐 그냥 키스 생각만 해.”


처음에 키스 하나에도 안절부절 못하면서 온 몸을 발발 떨었던 이상혁은 김인성의 스킨쉽 러쉬에 이제 이런 상황이 와도 그렇게 크게 당황하지 않았지만 소유욕이 없다던 김인성의 이 집착에는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다정했던 김인성은 정말 이상혁에게만 다정하고 이상혁에게만 집착하는 김인성이 되고 있었다. 좋은 건 가? 모르겠다. 김인성도 이상혁도 제대로 된 연애는 이게 처음 이었니까. 그냥 우리가 좋으면 되는 거지 뭐.


상혁이 징징 거리는 인성의 입술을 엄지로 살살 문지르며 형, 여기 침 묻었다. 하고 샐죽 웃었다.


“그러고 보면 나 오늘 상혁이 네가 준 초콜릿 엄청 받았어.”

“내가 준 초콜릿이요?”

“오늘 손님들한테 네 이름으로 초콜릿 받아서 전부 버렸어. 내가 산 거 먹이려고. 그러니까 넌 이거만 먹어. 알았어?”

“헐, 내 건데 형이 왜 버려요?”


상혁이 눈을 모로 뜨고 장난스레 인성의 가슴팍을 밀치자 인성이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상혁의 입 앞으로 다시 초코 과자를 들이밀었다. 아 해 상혁아, 너는 이거만 먹어. 너 이제 주방 밖으로 나오지 마 상혁아. 형 오늘 너무 속상했어. 우리 상혁이 예쁘다는 사람 많아서. 내가 너한테만 다정 할 테니까 너는 나한테만 예뻤으면 좋겠다. 주르륵 미끄러진 인성의 손에서 초코과자를 입으로 받아 문 상혁이 제 손으로 과자를 들고 조그만 입으로 똑똑 과자를 씹었다.


“안달아, 상혁아?”


상혁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씨익 웃자 과자를 먹느라 볼록하게 튀어나온 상혁의 뺨을 살살 쓰다듬은 인성이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많이 먹으라며 과자 상자를 상혁의 앞으로 당겼다.


“해피 발렌타인 이상혁.”


아, 그리고 너 그 떡볶이 코트 버리자. 형이 새 거 사줄게.

왜요, 난 그게 제일 좋은데.

더 좋은 거 사줄게.


***


“상혁아-”

“형, 나 여기!”


상혁의 방이 될 뻔 했던 창고 방은 상의를 거쳐 두 사람의 취미를 가득 채워 넣은 다용도실로 만들었다. 퇴근 후에 씻고 나와 잠옷을 입은 인성이 거실에도 없는 상혁을 부르자 목소리가 딱 작은 다용도실에서 들렸다.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디브이디나 만화책을 가득 채워 놓은 방은 침대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파를 들여놓자 꽤 구색이 갖춰져 아늑해 보였다. 최근에는 안방 침실보다 이 곳에서 잠드는 일도 허다했다. 먼저 씻고 잠옷을 갈아입은 상혁이 냉장고에 있던 맥주 두 캔을 꺼내 인성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는 맥주 캔을 따며 이건 형 거! 하고 내 밀었다.


“와, 이상혁 완전 술꾼. 스무 살이라고 이제 맥주 막 먹지?”

“형이랑만 먹는 거예요. 형이랑만.”


맥주캔을 받아들며 상혁의 옆에 앉은 인성에게 안성맞춤으로 꼭 맞게 몸을 기댄 상혁이 인성의 덜 마른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드라이 대충 했네? 머리카락 상하는데. 인성의 밝은 갈색 머리칼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린 상혁이 샴푸 냄새 좋다아- 하면서 말꼬리를 늘리고 인성의 어깨 위로 얼굴을 얹으며 팔로 허리를 감쌌다. 미리 플레이한 영화의 스토리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인성도 상혁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최근 인성과 상혁은 둘만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이 노곤하고 끈적한 분위기를 나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인성은 여전히 상혁에게 키스 외에 스킨쉽을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상혁을 아이 취급 할 수는 없다고 인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겠지. 그냥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정도로만 상혁을 어르는 중이었다.


소파 앞 테이블에 한 입도 마시지 않은 맥주캔을 내려놓고 제게 안겨오는 상혁의 뒤통수를 느리게 쓰담으며 저와 같은 샴푸를 사용한 상혁의 머리카락에 코를 받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인성이 그러게, 냄새 좋다. 이번에 장보러 갔을 때 바꾼 거지 이거? 하고 물었다. 상혁이 우응, 하고 한 템포 느리게 대답했다.


꼬물꼬물 손가락으로 인성의 잠옷 자락을 구겼다 폈다 손안에서 만지작거리던 상혁이 고개를 돌려 형아 나 뽀뽀- 하고 인성을 올려다보자 인성이 푸스스 웃으면서 고개를 내려 반쯤 감긴 상혁의 눈에 한 번 동그란 코끝에 한 번 툭 삐져나온 부리에 한 번 입을 맞췄다. 쪽쪽쪽- 부러 마찰 소리를 크게 내며 입을 맞추고는 졸리면 들어가서 잘래? 하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준비해 둔 디저트가 일찍 소진 되는 바람에 오늘 마감은 좀 이른 편이었다. 거기다 내일은 휴무가 끼어 있는 월요일이라 늦게까지 놀 거라며 하루 종일 들 떠 있던 상혁이었는데 씻고 나와 인성의 품에 안겨 있다 보니 솔솔 잠이 오는지 모든 행동이 0.5배 쯤으로 느려져 있었다.


“영화 내일 보고 오늘은 일찍 자자 상혁아.”

“그냥 이렇게 있다가 여기서 자면 안돼요? 나 지금 너무 따뜻해서 좋아.”


모든 게 처음일 저를 알아서 인성이 많이 배려한다는 걸 알고 있는 상혁도 부러 스킨쉽을 조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스무 살, 첫 연애, 첫 키스. 그리고 아마 인성과 하게 될 첫 관계 같은 것들이 너무 설레다가도 너무 두렵고 두근거리다가도 무서웠다. 그래서 답싹답싹 안기다가도 밀어냈고 끈적하게 키스를 하다가도 아무것도 모른 척 잠이 들었다.


상혁의 동그란 이마에 쪽쪽 부리로 쪼듯 입을 맞추던 인성이 그러자 그럼 하면서 뒤쪽에 놓여 있던 담요를 끌어와 상혁의 위로 덮고 제 허리를 감은 상혁의 팔을 가슴위로 모아 준 뒤 품에 꼭 맞게 끌어안았다. 팔을 뻗어 중반쯤이 넘어간 영화를 끄고 김이 다 새 버린 맥주 캔을 밀어 둔 인성이 토닥토닥 느리게 상혁의 등을 두드리며 귓가에 상혁이 좋아하는 자장가를 속삭였다.


까무룩 잠이 들며 스르륵 내려앉는 상혁의 눈꺼풀을 엄지로 살살 만지다가 가지런히 내려 앉은 속눈썹을 보고 빙긋이 웃은 인성이 잘 자, 상혁아. 하고 속삭이면 상혁이 잠꼬대인지 뭔지 모를 소리로 으응... 하고 웅얼거렸다.



일찍 선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상혁이 눈을 뜬 건 옆자리가 너무 허전해서였다. 습관적으로 팔을 뻗어 인성을 끌어안으려던 상혁이 차가운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흐릿하게 눈을 떴다. 인성이 형?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인성을 부르다가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DVD 책장 구석에 전자시계로 새벽 3시를 확인하고 휘청휘청 잠에 취해 몸을 일으켰다.


다용도실 문을 빼꼼 여는데 바로 앞에서 불쑥 나온 인성이 상혁아 왜 깼어? 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옆에 형 없어서.”

“아, 화장실 갔다 왔는데.”

“화장실?”

“들어가서 자자. 거실 추워.”


어쩐지 허둥지둥 나가려던 상혁의 몸을 뒤로 돌려 다시 침대 위로 눕혀 준 인성이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혁의 등을 토닥였다.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그 약간의 거리감에 외려 상혁의 잠이 훨훨 날아가는 줄도 모르고 팔만 쭉 뻗은 인성이 조심스레 상혁의 몸을 토닥였다. 얌전히 잠을 청하려고 누웠다가 번뜩 눈을 뜨고 몸을 모로 눕혀 인성을 향한 상혁이 제 움직임에 눈에 띠게 움찔하는 인성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 형 봐라?


“왜 그렇게 떨어져 있어?”

“어?”

“화장실 갔다 온 거 맞아? 형 뭐했어?”

“화장실, 갔다... 왔는데?”

“왜 이렇게 부자연스러워. 형 연기는 하면 안되겠다.”


“아... 음...”


상혁아 그냥 모른 척 하고 자면 안 돼? 인성이 아주 난감한 목소리로 여전히 허공에 뻗을 팔을 어쩌지 못 한 채 말하자 상혁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빛내며 눈을 흐리게 떴다. 잠깐 텀을 두며 괜히 애절한 인성의 말을 알아 듣는 척 하던 상혁이 싫어! 하면서 폭, 인성의 품에 안겨 든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다. 아- 하는 인성의 짧은 한숨과 팔다리를 꼭 맞게 인성의 몸에 얹었던 상혁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헐, 뒤 늦게 터진 외마디 말은 상혁의 목소리였다. 꼼질꼼질 제 팔다리를 풀어내 인성과 거리를 벌리고 멀어진 상혁이 덮고 있던 이불로 제 얼굴을 푹 가리고 잘 자 형아... 하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상혁아 형, 안방 가서 잘게...


부시럭거리던 인성이 자리를 떠나며 남긴 말에 상혁은 보이지도 않겠지만 이불속에서 머리를 크게 끄덕거렸다.


“미쳤나봐.”


인성이 다용도실을 나가면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숨을 몰아 쉰 상혁은 그날 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대체 제 허벅지에 와 닿던 그 딱딱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어떡해. 어떡하지. 사실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아서, 도대체 그래서 이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그걸 고민하느라 밤을 샜다. 김인성이 섰어. 머릿속엔 밤새도록 그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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