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사이

그래도 되는 사이 09

보호자

과학은 잘 모르지만, 유전자라는 게 참 신기하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뚱한 얼굴로 눈도 안 마주치던 두 남매가 햄버거를 똑같이 양 볼 빵빵하게 우물거리는 모습이 너무 어이없도록 똑같아서 영빈은 아까부터 입 안쪽을 꽉 깨물고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서로 본인이 잘못해서 서로를 상처 줄 뻔했다는 게 미안하고 민망한 모양이었다. 아이고 이씨 남매 귀여워 어째, 영빈은 잘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고 입가에 마요네즈 소스를 묻힌 지도 모르는 재윤에게 냅킨을 집어 내밀었다. 응? 갑자기 저를 향한 영빈의 손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너 여기 묻었어, 하는 뜻으로 오른쪽 입술을 가리키니까 습관처럼 얼굴을 쭉 뺀다. 형이 닦아줘 라는 뜻인 걸 알아서 영빈도 자연스럽게 재윤의 입가를 닦아주다 말고 움찔했다. 우리 방금 너무 우리만 있는 것처럼 굴지 않았니?



그래도 되는 사이 09

재윤 x 영빈

W. 갈피 



"오빠가 얼라가, 묻은 건 오빠가 쫌 닦지?"

 

서윤은 새초롬한 표정으로 재윤을 노려봤다. 영빈의 앞에서는 부단히도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더니 재윤이 오자 경계가 풀린 모양인지 사투리 풀 장전이었다. 재윤은 습관처럼 했던 행동에 머쓱한지 큼큼 막히는 목을 가다듬으며 콜라 빨대를 쭉 빨았다. 그리고 영빈은 그 모습에 웃음이 빵 터져서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갑작스러운 영빈의 박장대소에 두 남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는데 영빈이 냅킨 하나를 더 집어 이번엔 서윤에게 내밀었다. 서윤아 너도 똑같은데 묻었다. 여어기, 불쑥 나타난 영빈의 손이 좀 전보다 더 다정하게 서윤의 입가를 닦아냈다. 순간 얼굴이 벌게진 서윤이 손으로 입가를 여기저기 더 문지르자 영빈이 이제 묻은 데 없어. 하고 달랬다. 재윤은 고개를 돌려 큭큭대고 웃는 참이었다.

 

"오빠 니는 봤으면 먼저 말해주지, 창피하구로."

"내도 인제 봤다. 원래 우리 둘 다 뭐 먹을 땐 암꺼도 안 보인다 아이가."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큭큭큭, 킥킥킥 입안에 가득 찬 음식물을 씹지도 못하고 셋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웃었다. 별달리 크게 웃긴 것도 없는데 유하게 풀어진 분위기엔 그저 눈만 마주쳐도 계속 웃음이 터져서 나중엔 광대가 다 당길 지경이었다. 아 배 아파. 햄버거를 반밖에 못 먹은 영빈이 남은 걸 재윤의 앞에 두자 제 몫을 벌써 다 해치운 재윤이 자연스럽게 영빈이 남긴 걸 집어 마저 먹기 시작했다.

 

"오빠는 이거 밖에 안 먹어요?"

"응? 많이 먹은 거 같은데. 햄버거가 너무 컸어."

 

똑같은 메뉴 세 개를 시켜놓고 건장한 남성이 햄버거가 컸다고 말하면서 반이나 남기면 마지막 한 입만 남겨놓은 여고생은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클까, 서윤이 놀란 눈으로 마지막 한 입을 꿀꺽 삼키자 저 형 원래 토끼 입이다. 밥도 뭔 개미 맨치로 먹는다. 아나, 니 신경 쓰지 말고 감자튀김도 다 먹어라. 재윤이 서윤의 앞에 콜라를 밀어주며 감자튀김 박스를 열고 봉투에 쏟았다. 케첩을 가져와 서윤의 앞에 쭉 짜주면 서윤은 그걸 또 물끄러미 보다가 씨익 웃으면서 감자튀김 하나를 집어 먹었다.

 

"이제 쫌..."

"응?"

"우리 오빠 같네."

 

그 말에 재윤이 영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운했구나, 오빠가 변한 거 같아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빈은 제 누나가 매형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저녁을 먹고 체해 3일 동안 앓아누웠었다. 형이 장가간다고 형수님을 소개했을 땐 좀 덜했지만, 여전히 소화제는 먹어야 했다. 얼마나 살갑게 지냈느냐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형제에게 가족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건.

 

동생이 서울에 올라왔다는데 왜 왔냐고 묻지도 않고 버럭버럭 화를 냈던 게 또 심히 미안해 지는 순간이었다. 재윤은 말없이 남은 햄버거를 한입에 밀어 넣고 서윤의 눈치를 살폈다. 서운했나? 오빠 변한 거 같아가? 재윤이 물으면 서윤은 영빈에게 할 대답을 고르던 것처럼 한참 고민했다. 어떤 답을 하든 재윤과 영빈은 상처받지 말자고 서로 스치듯 눈빛을 주고 받았다.

 

"나는, 방해 할려고 온 거 아이고. 오빠가 쫌... 오빠 아인거 같아가. 쫌 무서워서, 서운해서. 그냥 보고 싶어 온기다. 내 뭐 어떻게 할라고 온 거 아이다."

 

기다란 감자튀김 끝에 케첩을 듬뿍 묻혔다 덜어낸 서윤이 눈을 내리깔고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안다. 내 잘못 한 거. 오빠야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불쑥 막 찾아와가 영빈오빠 괴롭힌 거 내도 미안타. 잘못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꺼내기 어려워지는 말들이었다. 서윤은 솔직하게 굴었다. 그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안다는 듯이. 그걸 서윤에게 가르쳐 준 건 재윤이었다. 서윤에겐 엄마, 아빠보다 오빠가 더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서윤은 영빈에게도 죄송합니다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영빈은 손사레를 쳤다. 내가 더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영빈은 사과했다. 사실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해가 필요한 관계였을 뿐. 이젠 재윤만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다.

 

재윤은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남을 배려하기 위해 더 오래 생각하고 행동하느라 말이나 행동이 좀 느린 편이었다. 그걸 서윤에게 그대로 가르친 것 같아 내심 불안했는데 기특한 제 여동생은 오빠보단 나은 사람인 것 같았다. 재윤은 참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제 속을 좀 숨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영빈과도 자주 싸웠고 지금은 많이 맞춰가는 중이었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아, 솔직하면 더 좋고. 진심이 담긴 빠른 사과가 제일 좋아. 언젠가 재윤이 제 동생에게 해준 말을 영빈이 재윤에게 해준 적이 있었다. 재윤은 영빈과 눈을 마주쳤다. 영빈은 더 늦기 전에 사과하라고 검지와 중지를 들어 제 눈을 한 번, 재윤의 눈을 한 번씩 쿡쿡 찌르는 시늉을 했다. 내가 보고 있다, 이재윤. 이럴 땐 재윤이 연하인게 확연히 느껴졌다. 겨우 한 살이라도.

 

"...미안, 오빠가 미안타. 잘못했다. 니 얘기 하나 안 들어보고 화만 내지른 거도 미안하고. 먼저 니 못 믿고 불안해 한 것도 미안. 나도 아직 크는 중인 갑다."

"뭐어... 그렇게 미안할 일은 아니고."

 

사과하라고 종용했지만 원래 형제 간에 싸움엔 딱히 미안하단 말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싸우고 나서도 십분 만에 라면 먹을 건데 같이 드실? 하고 틱틱 거리는 게 나름의 사과 아니었던가. 영빈은 이 순하고 말랑말랑한 남매가 정말 정직하게 서로 미안하다 괜찮다,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 동안 생각했다. 나는 형이랑 누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그러니까...

 

"니 걱정할 만 한 일 안 한다. 니 내 믿제?"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

 

재윤과 서윤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재윤은 2년이 넘도록 유학을 가 있었고 돌아오자마자 겨우 며칠 만에 서울로 취직을 했다며 집을 떠났으니까 서윤이 얼마나 서운했는지는 차마 하루 안에 다 말 못 할 것들이었다. 그게 오빠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 불쑥 서울로 올라온 이유라고 했다. 이제 영영 오빠가 멀어지는 느낌이라서. 영빈은 그즈음까지 두런두런 말을 나누는 남매를 보다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를 피해주었다. 새벽 내내 둘이 긴긴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침실에서도 옅게 들렸다.

 

"간다고?"

"네, 여는 시험 보는 학교하고도 너무 멀고. 원래 잡아 놓은 숙소도 취소 수수료가 쫌 아깝고 해서요."

 

용케도 셋 다 아침형 인간인 터라 시곗바늘이 8시를 '땡' 치자마자 말끔하게 세수를 마치고 식탁에 모여들었다. 재윤과 영빈은 원래 아침엔 각자 만든 커피와 빵을 먹는 편이었는데 차마 시험 보러 간다는 수험생에게까지 그런 부실한 아침을 먹일 수는 없어서 부랴부랴 된장찌개며 계란후라이까지 뚝딱 합심해 차려낸 참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두 손을 꼭 모으고 귀엽게도 인사한 서윤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손님방에서 미리 싸놓은 캐리어를 돌돌돌 끌고 나와 이젠 간다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여기가 불편해? 아님 내가 뭐 불편하게 했어? 재윤이가 나 때문에 가라고 한 거 아니지? 그런거면 내가 이기니까 말해, 여기 더 있어도 돼."

 

영빈이 따발총처럼 말했다. 재윤은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고 서윤은 재빨리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거 아니고 진짜로 여가 시험 보는 학교랑 쫌 멀어가 불편해서요. 애초에 이 집에 있겠다고 쳐들어온 게 너무 충동적이었고 오빠들한테도 민폐고.

 

"민폐 아니야. 정말, 진심으로. 그러니까 또 놀러와."

"오빠가 그래 말해주면 저는 또 좋고요."

 

어제보단 한결 가볍고 편한 얼굴을 한 서윤이 아침밥도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영빈이 잠깐만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그 틈에 재윤이 서윤을 꼭 끌어안고 진짜로, 또 놀러 온나. 알았나? 하고 제 동생을 참 애틋하게도 달랬다. 집에 가기 전에 시간 있으면 카페 들러가 인사하고 가고. 그라믄 역도 오빠가 바래다 주께. 잔소리를 더한 다정한 참견이 평소 같이 따박따박 적립되는 중이었다. 서윤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면서 예쁘게 웃었다. 이제 정말 가야겠다며 신발을 꿰어신는 서윤의 앞에 그새 후다닥 달려온 영빈이 꽤 큰 사이즈의 보온 텀블러를 내밀었다.

 

"내가 내린 커피. 맛있다고 해줘서 고마워, 또 내려 줄 게 꼭 와. 너무 급하게 내려서 맛은 보장 못 하겠다. 나 이래 봬도 되게 유명한 바리스타야 우리 가게 꼭 와. 알았지?"

"와? 이건 쪼매 감동이다. 감사합니다."

"시험 꼭 잘 보고! 내년에 서울에 오게 되면 더 자주 보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윤을 영빈은 집안에서 배웅했다. 재윤아 넌 택시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고 와. 일부러 둘이 안녕을 하라고 재윤의 등을 떠미니까 네네, 하며 순순히 따라 나갔다. 재윤은 동생의 묵직한 캐리어를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혼자 들면 안 무겁나? 나 한테도 쪼매 무거운데? 하며 또 걱정 어린 잔소리를 시작했다. 서윤은 그저 배시시 웃으며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재윤의 손에서 캐리어를 뺏어 들었다.

 

"혼자도 잘 든다. 나도 이제 내년부터 성인이거든? 오빠는 여까지만 온나, 혼자 갈 수 있다."

"왜? 차 타는 것만 보고 갈게."

"됐다. 오빠 계속 따라오면 가기 싫어서 또 운다."

"...알았다."

"그카고."

"...?"

"놓치지 마라. 좋은 사람 같다. 내 영빈 오빠야 좋다."

 

영빈이 준 커피 텀블러를 손에 들고 살랑살랑 흔든 서윤이 예쁘게 웃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사이로 전화할게! 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다 사라지고 나서야 재윤은 뭐가 지나간 건가 싶어서 한참 그 자리에 멍을 때리고 서 있었다. 그리곤 번쩍 정신이 들어 웃음이 터졌다. 놓치지 말라니, 그 짧은 한마디에 들어있는 어떤 응원의 의미가 퍽 위로가 되었다. 정말 다 컸네, 내 동생. 굳어있던 어깨를 기지개를 켜 풀어내고 영빈이 혼자 있을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놓치지 말아야지, 저 사람 많이 좋아하니까.

 

***

 

돌아온 일상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가을이 막 지나간 겨울 초입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드립 커피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영빈은 인성을 데려다 앉혀놓고 커피를 가르쳤다. 명색의 카페 점주고 사장이면 드립은 아니더라도 머신을 다룰 줄 알아야지 하고 어깨너머로 따라만 하던 인성을 본격적으로 들들 볶기 시작한 거였다. 야매 아니야? 너 교육 자격증 있어? 툴툴거리는 인성의 등짝을 몇 번이나 때리면서 카페 벽면에 걸린 바리스타 자격증과 입상 경력를 줄줄 읊었다. 너는 영광인줄 알아야해 나는 프랑스에 있는 재빵사도 하루 아침에 한국으로 부를 수 있는 능력있는 바리스탄데 친구 좋다고 너랑 동업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돈 벌면 이재윤 데리고 나갈 거니까 너도 노후 준비해. 너도 나중에 빵 만드는 애인 만날지 어떻게 알아. 하면서 타박했다.

 

그 와중에 서윤은 실기 시험에 합격했다고 영빈에게 먼저 연락했다. 번호는 언제 땄는데? 둘이 카톡을 주고받는 걸 보고 재윤이 놀라 물었다. 영빈은 대답 없이 씨익 웃었다. 내년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면 서울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던 서윤이 영빈이 타 준 커피 덕분이라며 예쁜 말만 골라 카톡을 보냈다.

 

"맨날천날 핸드폰만 보고 웃어 쌌네, 다른 애인 생깄나?"

"있다하면 내캉 헤어질래?"

 

재윤이 제 동생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영빈에게 돌려주자 장난스레 삐죽거리던 영빈이 말도 안 되는 사투리로 맞받아쳤다. 억양이 하도 어색해 민망함에 웃음이 터진 영빈이 그것마저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재윤에게 그만 보라며 눈을 가리자 눈 앞을 가린 영빈의 손목을 잡아 내리며 왜 쫌 보자, 하고 재윤이 일부러 놀렸다.

 

나 사투리에 환상 있어, 수도권 토박이 영빈이 재윤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이었다. 서울에 온다고 일부러 사투리를 고치려 부단히도 노력하던 재윤은 영빈의 '사투리 하는 사람 멋있어!' 라는 말에 영빈의 앞에선 일부러 더 억양을 세게 하기도 했었다. 그걸 가끔 영빈이 어설프게 따라 할 때면 얼마나 귀여운지 영빈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고마해라, 영업 시작했다. 이 커퀴들아. 손님 들어 온 거 안 보이냐?”

 

그리고 그걸 아주 짜증스럽게 갈라놓은 인성이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손님을 가리키며 눈썹을 들썩거렸다. 여전히 일정한 시간에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온 직장인 손님은 재윤과 영빈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싸운 그 장본인이었다. 김영빈을 좋아한다고 온몸으로 티를 내던. 남자는 인성이 서 있는 카운터와 영빈이 서 있는 바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영빈의 뒤에 서 있던 재윤과 슬로우모션처럼 눈이 마주쳤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영빈의 뒤에서 재윤은 남자가 어떻게 해도 알아볼 수 있도록 또박또박 입을 벙긋거렸다.

 

‘내 사람이야, 꺼져.’

 

흐린 눈으로 봐도 확실하게 이해할 만큼 정확하게 소리 없이 제 할말을 전달한 재윤이 사색이 되어 입술을 꾹 물고 씩씩거리는 남자에게 티끌 없이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알아들었구나 싶은 반응에 그대로 영빈의 허리를 감싸 보란 듯이 제품에 딱 붙인 재윤이 응? 하고 영문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저를 올려다보는 영빈에게 나 이제 베이킹룸 들어갈게 하며 홀을 한 번 살피고 이쪽을 보는 손님이 없는걸 확인한 뒤에 영빈의 눈가에 쪽- 입을 맞추고 돌아섰다. 헐, 그걸 목격한 인성이 육성으로 소리 낸 제 입을 틀어막고 여전히 카운터에 서 있는 손님을 살피자 들고 있던 결제 카드가 휘어지게 손에 힘을 준 남자가 눈에 불이 날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씩씩거리다가 픽- 비웃으면 돌아서 그대로 카페를 돌아 나갔다.

 

아, 정상적인 반응은 아닌데?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확인한 인성이 조금 구겨진 얼굴로 영빈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영빈은 재윤이 한 뽀뽀에 정신이 팔려 붉어진 얼굴을 손부채질로 삭이는 중이었다. 기우겠지, 괜한 걱정이겠지. 인성은 찝찝함을 애써 지웠다.

 

***

 

평탄하고 평범한 김인성 인생에 가장 굴곡진 사건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인성은 없다고 대답할 거고 김영빈은 그때지, 김인성 군대 가기 전에. 라고 언제 물어도 똑같이 대답할 수 있었다. 착한 어린이 증후군처럼 매사 웃고 다니던 착한 어른이 김인성에게 꽤 관상 안 좋은(물론 전지적 김영빈 관점으로) 남자 후배 하나가 선을 넘을 듯 말 듯 친한 척 굴면서 인성의 옆에서 계속 치댄 적이 있었더랬다. 물론 김인성이 게이라는 건 그때도 지금도 김인성의 가족과 김영빈밖에 모르던 시절이었으나 그쪽 세계를 잘 모르는 김영빈이 봐도 그 후배는 김인성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고 싫은 건 싫다고 좀 거절도 해야 그런 애들이 아닌 줄을 안다는 영빈의 조언에 따라 ‘나는 네가 부담스럽다.’, 는 한 마디를 남긴 인성에게 반발심을 가진 그 후배가 인성을 학과 내 가장 문란하고 더러운 소문을 가진 최악의 인간으로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습관처럼 매사 사람들에게 친절하기 위해 애썼던 인성은 아닌 척하기엔 그 사건에 동조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심하게 상처받았고 다 잊기 위해 군대로 도망을 쳤던 전적이 있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향해 가진 일방적인 호감은 언제든 그 결을 달리해 상대에게 위협이나 협박 또는 좀 더 삐뚤어진 형태의 무언가로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가 격었던 그 상황이 되풀이되었을 때, 인성은 말로 못할 절망감을 겪어야 했다. 지나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 찝찝했던 무언의 표정을 두 사람 중 누군가에게는 꼭 알려야 했다고.

 

 

“김영빈!!!!”

 

울부짖음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번쩍 고개를 쳐든 인성이 재윤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벽에 기대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산발한 채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틀비틀 인성의 앞에 선 재윤이 이미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형, 아, 영빈이... 우리 영빈이, 뭐가, 왜 저기...”

“재윤아, 재윤아 일단 진정하고.”

“왜!!! 왜에! 저기, 있는데! 어? 형, 왜!”

 

몸이 좋지 않아 먼저 퇴근했던 재윤이었다. 저녁 영업에 필요한 양까지 미리 만들어 두고 쇼케이스를 꽉 채운 채 그냥 일찍 자면 괜찮을 거라며 같이 퇴근한다던 영빈을 말렸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았고 영업을 일찍 접기엔 영빈의 커피는 겨울이 깊어질수록 저녁에도 인기였다. 겨울이라 몸살이 왔나보다,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종합감기약을 사고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대충 씻고 침대에 동그랗게 말려 까무룩 잠이 들었던 참이었다.

 

쉴 새 없이 울어대는 핸드폰 진동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손을 뻗은 재윤은 인성을 알고 나서 그렇게 절망적이고 우울한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 그, 미친놈이, 영빈이가, 칼에, 수술 중인데, 피가, 보호자가.

 

벌떡 일어나 이불을 걷어내고 그대로 뛰쳐나가 지갑만 들고 아무 신발이나 꿰어 신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우당탕탕 계단을 뛰어 내려가 미친 사람처럼 길거리로 뛰쳐나가 택시를 잡았다. 가는 내내 인성이 말해준 병원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울었다. 택시기사님이 정신 차리라고 힘내라고 병원 한 단어만 듣고 재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수술은 세 시간째 진행 중이었다. 장기가 손상된 것 같아 자세한 상황은 배를 열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한 게 의사의 마지막 설명이었다고 인성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 오묘한 웃음을 던지고 사라졌던 남자가, 재윤이 영빈을 제 사람이라고 말 한 이후부터 발길이 끊어졌던 그 남자가, 아무래도 재윤이 걱정되 조금 일찍 혼자 퇴근하던 영빈에게 접근했고 분명한 거절을 말하는 영빈에게 몇 번이나 회유와 협박을 거듭한 끝에 결국 극단적인 일까지 벌였다고 했다. 카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에 주변인들의 신고가 있었고 인근 상인들이 영빈의 얼굴을 알고 있어 119를 부르면서 카페로 연락을 한 덕에 인성이 빠르게 병원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된 남자는 생각보다 꽤 오래 영빈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핸드폰에선 몰래 찍었던 영빈의 사진과 카페 근처 사진들이 제법 많은 양 확인되었으며 그의 진술은 일관되게도 딱 하나였다고 했다. ‘그 사람이 여지를 줬어요. 그래놓고 애인이 있데요. 그건 그 사람 잘못이죠.’라고. 남자는 같은 이력을 가진 전과자임이 확인되었고, 집행유예중에 벌어진 사건으로 가중처벌을 받아 실형을 면치 못 할 거라고 했다. 인성은 차마 그 끔찍한 이야기까지는 재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인성아.”

“형.”

“영빈이는.”

“아직, 수술중이요.”

 

다 도착했다는 영재의 연락에 인성이 여전히 수술실 앞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재윤을 두고 로비로 내려갔다. 영빈이 다쳤다는 말에 정신이 어지간히 없었는지 지갑도 놓고 택시를 타는 바람에 인성을 로비까지 부른 영재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인성은 괜찮다고 영재를 데리고 수술실로 올라가면서 마지막 코너를 앞에 두고 말했다. 근데 형, 재윤이 와 있어요. 라고.

 

영빈에게 상처를 주면 아무리 형제라도 참지 못할 것 같다고 했었나? 지켜봐 달라고 했었나? 영재는 그 말에 온몸에 화가 끓어 당장 수술실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재윤에게 뭐든 따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재윤을 눈앞에 둔 영재는 단 한 마디도,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이러고 왔어? 이재윤씨?”

 

화가난 들소처럼 씩씩 거리며 재윤에게 향하는 영재를 보고 놀라 바짝 붙어 팔에 매달렸던 인성이 우뚝 멈춰서 묻는 영재에게 한숨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네. 하고 답했다. 재윤은 영재의 목소리를 듣고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꼭, 지금 이순간은 누구도 안중에 없는 듯이.

 

11월의 반이 지나간 한 겨울이었다.

 

주인에게 버려진 솜인형처럼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재윤은 반팔 차림이었다. 엉망진창으로 뻗친 머리와 퉁퉁 부은 얼굴과, 달뜬 피부가 재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말을 걸기도 뭣할 정도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벽에 머리를 기댄 재윤은 정말 세상이 무너진 사람 같아 보였다. 오른쪽 발엔 다 구겨져 뒷굽이 접힌 컨버스 화가 왼쪽 발엔 삼선 슬리퍼가 신겨져 있었다. 영재는 멀쩡하게 운동화를 챙겨 신고 코트를 꿰어 입은 제 몸과 재윤의 몸을 몇 번쯤 번갈아 보았다. 결국 터지는 한숨을 참지 못하고 마른세수를 하며 코트를 벗어 파리하게 질린 재윤의 구겨진 몸 위로 제 코트를 덮어주면서 여전히 생기를 잃은 두 눈이 굳게 닫힌 수술실 문만 바라보는 걸 보고 말없이 재윤의 곁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섰다.

 

***

 

재윤이 움직인 건 수술방의 빨간 불이 꺼졌을 때였다. 수술복을 갈아입은 의사가 나와 뭐라뭐라 설명을 하는 걸 눈을 꾹 감고 듣다가 괜찮다는 말이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눈물을 멈췄다. 장기 손상 정도는 크지 않았고 신고가 빨라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없었습니다. 예후는 지켜봐야겠지만 수술 과정은 원활했고 환자분 상태도 나쁘지 않았어요. 의식은 마취가 풀리면 돌아올 텐데 4, 5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일반병실로 옮길 테니까 보호자 분께서는 입원수속 먼저 하시고 자세한 설명은 병실에서 다시 드릴게요.

 

속사포처럼 내뱉는 설명에 재윤은 뭣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며 병실로 옮기는 영빈의 침대를 따라 휘청휘청 걸었다. 그 뒤를 따라 걷던 영재가 제게 다가와 보호자 분 성함을 어떤 분이... 라는 간호사의 물음에 제자리에 우뚝 멈춰서 꾹꾹 입술을 씹다가 답했다.

 

“방금, 환자 따라간 사람이요. 그 사람이 보호자예요.”

 

여전히 멀쩡하게 운동화가 신겨진 두 발이 너무 창피해서, 영재는 차마 영빈의 병실을 따라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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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그래도 되는 사이는 10편(완결)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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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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