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이

어떤 사이 12 (Fin.)

What's our relationship like?

린당


이주마다 돌아오는 정기 휴일에 상혁은 오랜만에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눈을 뜨고도 꾸물꾸물 이불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문득 옆자리가 허전한 걸 깨닫고 그제야 몽롱한 정신이 좀 돌아왔다. 퉁퉁 부은 눈이 뻑뻑해서 몇 차례 손등으로 비비다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다시 엎드려 몇 번이나 팔다리를 늘리며 기지개를 쭉 폈다. 지난밤에 정사로 허리가 뻐근했다. 시작이 어렵지 한번 하고 나면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하게 된다는, 영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티비를 보다가도,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하물며 밥을 먹다가도 인성과 상혁은 눈이 마주치면 입술을 붙이고 살을 섞었다. 첫 관계를 무서워했던 게 언제였냐는 듯이 상혁은 인성을 보면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인성도 다르지 않아서 상혁의 빗장뼈는 언제나 울긋불긋하게 인성이 씹어 놓은 자국이 한가득이었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보통의 사랑을 하면서 그냥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물론 고통은 익숙해지지 못했지만.


묵직한 허리께를 통통 두드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둘러보는데 어젯밤에 무슨 일이었냐는 듯이 침대 시트부터 바닥까지 침실 안은 전부 깨끗한 상태였다. 인성은 관계가 끝나고 나면 으레 상혁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워낙 덩치 차이가 크게 나는 바람에 관계 중에 상혁을 몰아붙이게 되는 것도 그랬지만 그냥 김인성 자체가 다정해 관계 후의 후희까지 전부 상혁에게 맞춰주는 편이라서 그랬다. 씻기고 입히고 깨끗한 침대에 눕혀 상혁을 재우고 난 뒤에는 콘돔이며 젤까지 모두 치우고 난 뒤에 잠이 들고는 했다.


부스스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대충 눌러 빗고 찐빵처럼 부어버린 얼굴을 꾹꾹 눌러 부기를 빼던 상혁이 느리게 걸어 방문을 열었다. 근데 이 잠옷 인성이 형 거 아닌가? 손바닥을 모두 덮을 정도로 긴 소매와 주르륵 한 쪽으로 흘러내리는 어깨춤에 고개를 갸웃하던 상혁이 주방에서 들리는 뚝딱거리는 소리에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인성의 옷이라고 확신했다.


조리대에서 늦은 아점을 준비 중인 인성은 상혁이 입고 있는 상의와 세트인 잠옷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얀 티셔츠로 대신한 인성의 상의를 확인한 상혁은 제가 입고 있는 헐렁헐렁한 상의를 한 번, 쭉쭉 뻗은 맨다리를 한 번 바라보며 그제야 제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한 듯 새빨개진 얼굴로 아우 저 형이 진짜, 하고 중얼거리며 혼자 분주한 인성의 등짝을 향해 전진했다.


“아니 왜 바지는 안 입혀 놔요.”

“상혁아, 일어났어?”


품 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너른 등짝을 뒤에서 폭 두 팔로 끌어안고 징징거린 상혁이 제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일어났냐며 빙글 돌아 제 이마에 입을 맞추는 인성을 아프지 않게 밀쳐냈다. 모로 치켜뜬 눈이 뾰족하게 인성을 쏘아보자 인성이 배시시 웃으며 예쁜 눈 해주면 안 돼? 하고 말하는 바람에 또 금방 순한 눈을 하기는 했지만 톡 튀어나온 통통 부은 입술은 여전히 귀여워서 인성은 그 위에도 여러 번 입을 맞췄다.


“변태.”


“다리가 예쁜 너를 탓해. 김인성 죄 없어.”

“헐, 진짜로 다리 보려고 벗겨놨어요?”

“상혁아, 말은 바로 하자. 형은 벗긴 게 아니라 안 입힌 거야. 벗은 건 어제 네가 직접...”


놀리는 투가 다분한 목소리에 상혁은 더 말할 필요 없다는 듯이 인성의 입을 두 손으로 꼭 막고 입술을 비죽거렸다. 자꾸 놀릴 거예요? 형도 좋아했으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자 킥킥거리며 상혁의 손바닥 안에서 웃은 인성이 이제그만 놀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상혁아 우리 콘돔 벌써 다 썼어.”

“벌써?”

“응, 산 지 얼마 안 된 거 같긴 한데…. 최근엔 좀 많이 하긴 했지.”


이번엔 형이 사요.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인성이 만든 볶음밥과 계란국을 테이블로 옮겼다. 플레이트를 마주 보게 놓지 않고 한쪽으로 몰아 놓는 상혁에 인성이 어? 나란히 앉아 먹을 거야? 하고 물으니 고개를 저은 상혁이 수저를 들고 있던 인성을 의자 위에 끌어다 앉히고는 인성의 무릎 위에 털썩 앉으며 배시시 웃었다. 형아가 바지 안 입혀줘서 그냥 앉으면 엉덩이 시려요. 식탁 의자는 엉덩이가 차가울 리 없는 패브릭이지만 그 말이 너무 앙큼해서 인성은 그저 웃으며 상혁의 허리를 한팔로 감아 제게 바짝 당겼다.


형아, 숟가락도 하나면 되지 않을까요?


상혁의 몫까지 숟가락 두 개를 들고 있던 인성이 그 능청스러운 말에 빵 터져 크게 웃으며 숟가락 하나를 멀리 치웠다. 밥 먹자 상혁아. 아 해. 인성이 그렇게 말하면 상혁은 까르르 웃으며 삐약하고 입을 벌렸다.



***



배부르게 밥을 먹고 양치에 샤워까지 하고 난 느지막한 오후엔 둘 다 외출 준비를 했다. 그 어느 날 상혁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날처럼 인성은 꽤 신경 써서 상혁의 옷을 골랐다. 오늘 외출의 목적지를 결정하고 나서 인성은 미리 물었다. 정장 입을래? 새로 사 줄까? 하는 말에 상혁은 그냥 단정한 옷이면 좋겠다며 웃었다. 인성이 미리 골라둔 깔끔한 곤색 와이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검은색 슬랙스를 차려입은 상혁이 인성이 왁스로 만져준 머리가 어색한지 거울을 보며 몇 번 손을 대다가 말았다. 어색해? 제 뒤에 서서 묻는 인성에게 조금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상혁이 거울 속에서 눈을 마주 보다 말고 빙글 돌아 조금 삐뚤어진 인성의 넥타이를 꼼꼼하게 만졌다.


“오늘도 멋있네요, 형.”

“오늘도 예쁘네, 상혁아.”


이제 갈까? 하고 묻는 인성에게 고개를 끄덕인 상혁이 인성이 꺼내 둔 구두를 신고 앞코를 톡톡 바닥에 치며 현관을 열었다. 완연한 봄 날씨에 포근한 기온이 기분 좋아 입가에 미소를 건 상혁이 미리 엘리베이터를 잡으며 인성을 불렀다.


“근처에 꽃집 있어?”

“꽃 사가게요?”

“보통 그러지 않나? 좋아하셨던 꽃 있어?”

“아아, 음... 모르겠어요.”


좋아하셨던 꽃.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선 상혁의 어깨 위로 셔츠와 색이 같은 봄 코트를 걸쳐 준 인성이 제가 입고 나온 짙은 녹색 코트의 단추를 채우며 물었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서서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갈 동안 상혁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고민했다. 잘 모르겠다는 상혁의 말에 인성은 혹시나 상혁이 시무룩해 질까 봐 말을 돌렸다.


“얼마 만에 가는 거야?”


“글쎄요. 고등학교 들어가고도 힘들면 울면서 몇 번 찾아가기도 했는데 하늘에서 보시기에 슬플까 봐 그것도 잘 못가겠더라고요. 가도 맨날 울기만 하고 그럼 또 지치고…. 살기가 바쁘기도 했고. 아주 어릴 땐 왜 곁에 없는지도 잘 이해 못 했으니까 못 가 봤던 거 같고.”


차를 타고 가면서 길거리에서 발견한 꽃집 앞에 차를 세운 인성이 상혁을 차에 앉혀 두고 혼자 꽃을 골라 꽃다발을 샀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히터를 약하게 틀어 놓고 상혁에게 자주 자장가로 불러주던 느린 발라드를 틀어 놓고 흥얼거리자 상혁은 조금 멀리 가는 길에 깜빡 잠이 들었다.



늦은 오후엔 하늘이 화창했다. 상혁은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하필 오늘 화창한 날씨가 마음에 들었다. 손잡아 줘요, 형. 코트 밖으로 삐죽 내민 상혁의 작은 손을 큰 손으로 꽉 감싸 쥔 인성이 어린아이처럼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치? 씨익 웃은 인성이 납골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자꾸만 상혁의 표정을 살폈다. 상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상혁의 손에는 영빈과 재윤이 미리 챙겨준 케이크 상자가 있었고 인성의 손에는 목화 한 송이가 안개꽃과 함께 장식된 작은 미니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서로 잡지 않은 손에 상혁의 어머니에게 드릴 것들을 나눠 들고 함께 걸었다.



“매일 울면서 왔는데. 오늘은 좀 웃어 보려고 왔어.”


잘 있었어, 엄마?


하도 오랜만이라 자리를 기억이나 할까 싶었는데, 자석에라도 끌린 듯 걱정이 무색하게도 상혁은 성큼성큼 엄마의 분골함이 있는 자리를 찾아갔다. 하얀 자기에 새겨진 엄마의 이름 석자를 확인하는 순간 꼭 마지막으로 엄마를 찾아왔던 날이 필름처럼 재생됐다. 비가 왔던 날, 유난히 빗장뼈가 욱신거렸던 날이었다. 그날도 야자를 빼고 알바를 했었다. 눅눅하게 젖은 몸에 찔꺽이는 컨버스 화를 신고 집에 와 교복을 빨았다. 화장실에 웅크리고 앉아 아버지의 면도기를 들고 몇 번이나 이생이 끝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싶다고 펑펑 울었다. 저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끔찍해서 문을 열고 뛰쳐나와 무작정 엄마에게 달려왔었다.


“그때, 내가 엄마한테 그랬어요. 마지막으로 엄마를 찾아왔던 날이요. 이렇게 끔찍한 곳에 날 남겨 둘 거면…. 차라리 나도 데려가지 그랬냐고.”


인성은 가만히 상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느리게 상혁을 위로했다. 그 손길에 마음이 녹아서 하얀 뺨으로 후두둑 녹은 마음이 흘러내렸다. 뒤에서 상혁을 안아 어깨 위에 턱을 대고 기우뚱거리며 펭귄처럼 상혁을 품에 담아내자 상혁이 온통 눈물에 젖은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좋네, 그땐 마냥 울었는데. 지금은 운다고 달래주는 사람도 있고.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던 상혁이 빙글 돌아 인성의 품에 얼굴을 박고 엉엉 울었다.


“형아, 보고 싶다. 우리 엄마. 너무 보고 싶다. 나 이렇게 행복한데, 엄마가 하나도 못 보는 게 너무 억울하다. 다 보여주고 싶다.”


“상혁아, 다 보고 계실 거야. 형이 진짜 잘할게. 형이 너한테 엄마도 해주고, 형도 해주고, 애인도 해줄게.”


상혁은 인성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고, 인성은 상혁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인성은 처음 상혁에게 고백하던 날처럼 끊임없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모든 세상이 되어주겠노라고. 처음부터 그걸 결심하고 너를 사랑했노라고. 상혁은 그냥 인성을 안고 있는 손에 더 꽉 힘을 주었다. 그게 서로에게 대답이 되었다. 고맙다는, 사랑한다는 그런 대답.


***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요?”

“사실은, 내가 준비한 거 아니야.”

“그럼?”


“우리 어머니가.”


“홍교수님이?”


영빈과 재윤이 준 케이크로 짧은 인사를 드리고 납골함 옆에 미니 꽃다발을 붙인 인성이 글라스도어를 열어 화사하게 웃고 있는 어린 상혁과 어머니 사진 옆에 상혁의 졸업식 날 카페 식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꺼내 놓아두자 상혁이 퉁퉁 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럴 때 되게 멋있게 내가 알아서 준비했지! 하고 싶은데, 형이 아직 그런 센스는 없나보다. 인성은 둥글게 말하며 입술을 삐죽하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머니한테 오늘 상혁이 너희 어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간다고 말했더니 예쁜 사진 좀 액자로 뽑아 가라고 하시더라고. 아들 웃는 게 보고 싶지 않으시겠냐고. 그래서 고민을 좀 했지, 이상혁은 나한테 다 예뻐서 핸드폰 갤러리가 터질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사진을 뽑아 가면 좋아하실까 하고.”


그러다가 사진도 홍교수님이 골라주셨어. 마지막으로 교복 입고 졸업하는 날, 상혁이 네 옆에 꼭 와보고 싶지 않으셨을까, 한다고. 엄마니까, 엄마라면 그러셨을 것 같다고. 내가 상혁이 너 졸업식날 찍은 사진도 보여드렸거든, 이제 어른 됐다고. 그렇게 말했다가 등짝도 좀 맞았어.


“아...”

“엄청 세게 맞았어. 어린애 홀려서 고생시킨다고.”

“고생은 형이 다 하는데…. 홍교수님 찾아 봬야겠어요, 감사하다고.”

“다음에 홍교수님네 가서 같이 밥 먹자, 꼭 너 데리고 오라셨어.”


인성은 상혁에게 본가를 말할 때 항상 홍교수님네 집, 김사장님네 댁. 하고 말했다. 내가 우리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상혁이 너랑 사는 집이니까. 라고 인성이 말할 때마다 상혁은 고맙고 미안해서 인성의 손을 꼭 쥐었다. 겨우 1년, 이상혁의 온 우주와 세상이 전환점을 맞고 턴을 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찾아왔을 때, 엄마한테 부탁했어요.”

“뭐라고?”

“날 데려가지 못할 거라면, 살려달라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그해 여름에 형을 만났어요. 가끔 생각해요, 엄마가 형을 보내준 게 아닐까 하고. 삶을 포기하기 직전에 형을 만났고 나는 아예 새로운 세상을 얻었으니까. 김인성이라는.


펑펑 울고난 뒤에 눈과 뺨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 상혁은 안 그래도 사랑스러웠다.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성을 바라보기만 해도 인성은 분명, 통통하고 빨갛게 부어버린 상혁의 입술에 입을 맞췄을 거였다. 그러나 이상혁은 언제나 생각보다 더 사랑스럽고, 눈물나게 예뻤다. 인성은 입술을 달싹 거리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상혁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모양을 보며 참지 못하고 눈꺼풀 위로 쪽- 짧게 입을 맞췄다.


“상혁아, 어머니 앞에서 키스하면 내가 너무 예의 없어 보일까?”


“음... 홍교수님이 제일 행복한 아들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실 거랬잖아요.”

“으음, 그렇지?”


“그럼 얼른 해요. 빨리 행복하게 해줘요.”


늦봄이 저물기 시작한 화창한 날의 늦은 오후는 납골당 밖으로 길게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설레지만 익숙한 감정으로 인성의 목을 끌어안은 상혁의 머리꼭지가 햇빛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쪽쪽 마주치는 버드키스 끝에 지긋이 입술을 맞대고 누른 가벼운 키스가 짧은 시간 이어졌다. 상혁은 새빨간 얼굴로 웃었고 인성도 그런 상혁을 품에 가득 안고 마찬가지로 세상 행복하게 웃었다.


“전에 형이 했던 말 기억해요?”

“어떤 말?”

“나는 아직 형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요.”


그때 형이 우리 사이는 아직, 형이 날 더 좋아하는 사이라고. 그랬잖아요. 나는 그게 너무 속상했어요. 내가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왜 자꾸 날 어린 애 취급할까 하고. 근데 형, 나는 벌써 그 전부터. 형이 형이 아니고 점장님이었던 때부터, 형네 집에 들어가 새벽에도 잠결에 내 손을 잡아 주는 형을 본 그때부터. 이미 형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형한테 사랑받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먼저에요. 형을 좋아한 건, 내가 먼저예요.


부드럽게 맞대고 있던 입술이 떨어지면 상혁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숨길 수 없다는 듯 온 마음으로 토해냈다. 그러나 인성은 그 귀여운 고백도 한참이나 어린 상혁의 열과 성을 다한 고백을 들으면서 자꾸만 입술 끝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혁아, 뭘 믿고 네가 먼저라는 거야. 내가 언제부터 널 좋아했을 줄 알고? 인성이 개구지게 묻는 말에 상혁은 또 촉촉한 눈을 모로 떴다. 놀리는 거면 하지마요. 나 지금 엄청 진지하게 고백한 건데!


놀리는 거 아니야 상혁아,


“나는 첫눈에 반했어. 그 더운 여름에도 나는 봄이었어, 상혁아. 너 때문에.”


그러니까 여전히 우리는, 내가 널 더 좋아하는 사이야.



***



사랑은 유치한 거라고 했다. 상혁은 내내 인성의 그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힘들게 토해낸 진심인데, 왜 저한테 첫눈에 반했냐고 징징거리기도 했다. 먼저고 나중이 어디 있어요, 지금은 내가 더 좋아해요. 하고 말하면 인성은 아주 태연하게 나는 사랑하지, 상혁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상혁은 인성이 부르는 제 이름에 약했다. 인성이 부르는 그 이름에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게 그냥 들으면서도 느껴져서 그랬다. 여전히 제 이름을 부르는 인성의 목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 발아래로 떨어져 펄떡이는 걸 두 손으로 버겁게 끌어모아야 했다. 인성은 여전히 끝을 모르고 다정했으나 그런 관점에서는 집요하리만치 양보가 없었다. 다른 건 다 져줘도 곧 죽어도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은 인성이라고 말했다.


쓸데없는 고민인 걸 알지만 여전히 제가 너무 어리고 챙겨줘야 하는 존재로만 비쳐 제 마음을 다 믿지 못하는 걸까 봐 조급함이 생겼다. 그래서 상혁은 틈만 나면 인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했다. 사랑 고백은 너무 자주 하면 질린다고, 진심이 덜 느껴진다고들 하던데 듣는 입장에서는 질릴 수도 있으나 하는 입장에서 상혁은 매번 인성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두 손으로 가슴께를 부여잡고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인성이 부르는 제 이름을 듣는 것처럼, 인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는 것도 똑같이 설레는 일이었다. 들을 때마다 언제나 세상 제일 행복한 얼굴로 입술 양옆에 쏙 들어가는 주름이 생기도록 웃어주는 인성을 보는 것도 늘 그랬다.




“내가 많이 사랑해요.”


영빈과 재윤을 먼저 보내고 둘이 함께 카페 마감을 하는 중에 홀 청소 중인 인성의 허리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은 상혁에 또다시 무차별 고백을 시작했다. 피식 웃은 인성이 마저 홀 청소를 하는 동안 상혁은 그 허리춤을 꼭 붙잡고 껌딱지처럼 붙어 종종걸음으로 인성의 뒤를 따라다녔다.


“아기 새 같다 상혁아. 내가 엄마 새 같아.”

“아기 아니고 애인이거든요? 애 취급 좀 그만 해요.”

“애 취급이 아니고, 귀엽다는 말이었어.”

“그만 귀여워지고 싶어요.”


형, 나 귀엽기만 해요? 귀여운데 왜 자꾸 바지는 안 입혀요? 집에 들어가면 왜 입술부터 무는데요? 콘돔은 왜 자꾸 떨어져요? 귀여운 애랑 그래도 돼요? 왜 내가 더 사랑한다고 하면 안 믿는데요? 응? 응?


아기 새 발언 한 번에 불평불만 폭격을 받아버린 인성이 정신을 못 차리고 제게 안겨 오는 상혁을 두 팔로 안아주다가 점점 밀려 벽에 등을 기댔다. 와 상혁아, 형 지금 설레.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벽치기야? 소녀 같이 웃으며 손으로 입틀막을 시전한 인성이 여전히 씩씩거리는 눈앞의 상혁을 보며 한쪽 눈썹을 들썩이곤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맘에 안 들어, 김인성.”

“진짜? 방금까지 사랑한다고 해놓고. 상혁이 거짓말쟁이네?”

“그거랑 그건 다르잖아요! 사랑하지만 미워!”


벽을 등 뒤에 두고 씩씩거리는 상혁의 어깨를 두 손으로 쥐고 있던 인성이 상혁의 밉다는 말에 훅하고 상혁을 당겨 와락 품에 안고는 얼굴을 상혁의 목덜미에 고양이 마냥 비벼댔다.


“형 미워하지마, 상혁아.”

“이제 귀엽다는 말 금지예요, 그리고 형도 불쌍한 척 금지야.”


낑낑, 인성은 부끄러움도 없이 상혁에게 매달려 소동물처럼 낑낑거렸다. 아직 카페 마감도 전이라 블라인드도 안 내렸는데 사람들이 봐요. 자꾸만 제게 치대오는 인성을 상혁이 슬쩍 밀어내자 인성은 그러면 밉다는 말 취소해줘. 하며 더 꼭 상혁을 끌어안았다. 가슴이 답답해 질만큼 힘을 주는 인성에 혹시라도 오가는 행인들이 밖에서 볼까 봐 발을 동동거리던 상혁이 손을 뻗어 벽면에 있던 스위치를 눌러 불을 아예 꺼버리자 환하던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깜빡깜빡 눈을 여러 번 감았다 뜨며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두 발이 붕 뜨는 느낌에 억- 소리를 낸 상혁이 아까와는 반대로 와락 인성의 목을 끌어안자 인성이 자연스럽게 상혁을 들쳐 안고 탈의실 쪽으로 걸었다. 무게중심이 불안한 지 두 다리로 인성의 허리를 꽉 감은 상혁이 형 뭐해요! 하고 외치자 인성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가 널 귀엽게만 본데?”

“뭐?”

“형도 귀엽기만 한 사람이랑 물고 빨고 섹스하고 안 그래 상혁아.”

“그럼 뭔데요.”


“섹시하지. 이상혁은 섹시한데 귀엽기도 한 거지.”


상혁아 너는 형한테, 섹시가 먼저야. 그래서 그냥 둘 수가 없네? 그 말을 끝으로 인성은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섬과 동시에 상혁의 입술을 진득하니 물었다. 통통한 아랫입술을 크게 베어 물고 쪽 빨아들이며 혀를 내어 핥자 상혁이 입술을 벌리고 고개를 틀어 더 깊게 다가왔다. 아이고 누가 가르쳤는지 키스도 잘하네, 내 새끼. 새가 모이를 쪼듯 쪽쪽 몇 번이나 얕게 입술을 쪽쪽 부딪치다가 감질맛이 난 상혁이 먼저 인성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머리칼을 헤집고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귓바퀴를 뭉근하게 문지르는 상혁의 손가락에 인성은 쉽게 달아올랐다.


귀엽기만 하면 절대 이렇게 못 해 상혁아. 한참이나 제 것인냥 쪽쪽 빨아대던 입술이 잠시 떨어진 틈에 색색 숨을 몰아쉬는 상혁에게 인성이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탈의실 의자에 제가 먼저 털썩 앉아 상혁을 무릎 위에 올리고 유니폼 셔츠 위로 톡 불거진 상혁의 가슴 돌기를 쭉 빨아 올린 인성이 신음소리를 먹으며 제게로 풀썩 쓰러지는 상혁의 몸을 받아들고 허리며 가슴 여기저기를 지분거렸다.


형, 혀엉. 여기서 할거에요? 진짜로?

왜 싫어?


아니이... 너무, 느낌이 이상한데.

그 이상한 느낌이 좋아서 여기서 하는 거야. 이상혁 발길 닿는 모든 곳에 전부, 김인성이 생각나게 할 거야.


상혁의 턱 끝에 입을 맞추며 목덜미로 혀를 미끄러트린 인성이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상혁의 유니폼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어 내렸다. 쇄골로 내려가는 하얀 가슴팍에 아주 조금 옅어진 흉터 위 흔적 위로 다시 입술을 문지른 인성이 아프지 않게 피부 위를 씹으며 계속 멍울을 남겼다.


“그럼 상혁아. 우리 이렇게 하자.”

“뭘요? 아, 형. 말할 때는 좀 멈춰요.”


선심을 쓴다는 듯 진지하게 말하더니 그 새를 못 참고 상혁의 엉덩이를 지분거리는 인성의 손에 펄쩍 뛴 상혁이 인성의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말했더니 인성이 상혁의 허리께를 두 손을 잡고 이마, 뺨, 코, 입술 할 것 없이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이냐면.”

“우리가 어떤 사인데요?”


인성이 제게 입을 맞출 때마다 눈을 깜짝이며 뒤로 밀리던 상혁이 그만하라는 듯 인성의 얼굴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거리를 벌리며 두 눈에 시선을 맞췄다. 우리가 어떤 사이냐구요. 다시 묻는 상혁의 얼굴을 웃는 낯으로 뚫어져라 바라보던 인성이 마침내 말했다.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는 사이.”


너는 나를 더, 나는 너를 더.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로 하자.


“이건 양보 못 하겠어. 나보다 널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상혁아.”

“아, 인정. 나도, 나보다 형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자신할 수 있어.”


인성의 대답에 상혁의 두 눈을 반짝하고 빛났다. 어두운 와중에도 그 반짝임은 인성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가로로 긴 눈에 혀를 대고 굴리면 유리구슬 같은 눈알이 느껴질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씹어 삼키고 싶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인성은 다시 한번 솟구치는 소유욕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 가지고도 전부 가지고 싶다. 상혁아. 그런 의미에서.


“형 이제 하던 거 마저 해도 돼?”


대답도 듣기 전에 인성은 상혁의 입술부터 물었다.





Fin





그동안 어떤 사이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이는 3편의 외전으로 마무리 됩니다 :)

1. 쟁빈 // 파리에서 온 남자

2. 린당 // 여름에 태어난 사람

3. 린당 // 필연은 우연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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