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이

어떤 사이 10 (+15)

After night.

린당


마음이 너무 커져서 그걸 담고 있던 그릇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상혁은 그러니까, 인성을 '사랑'하고 있다고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늘 제게 예스만 외쳐주는 그 김인성에게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다 못 해 시무룩할 지경이었다. 이래서 형이 계속 다음에, 나중에 고백하라고 했구나. 나는 형한테 줄 게 없으니까. 물론 인성이 뜻한 바는 그게 아니겠지만 차곡차곡 차올라 찰랑찰랑 한계까지 와있던 애정이 어느새 콸콸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나를 전부 인성이 형한테 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출근길 내내 딴 세상에 가 있던 생각이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감색 간판에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후다닥 뛰어 들어가 카페 문을 열자마자 숨 가쁘게 영빈이 형! 하고 외쳤는데 막상 주방에서 나오는 건 재윤이었다. 상혁이 왔나?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재윤이 단정한 유니폼 차림으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데 상혁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 채로 어깨를 움찔했다. 아아, 안녕하세요. 형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영빈이 형 아직 탈의실에, 나는 그냥 형 따라서 일찍 왔지."


아아…. 꽤 전력으로 뛰어오느라 턱까지 차오른 숨 때문에 내뱉는 말이 딱딱 끊겼다. 숨을 고르는 동안 딱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대충 끄덕인 상혁이 재윤의 눈치를 보며 영빈이 있을 탈의실을 힐긋거렸다. 물어볼 말이 잔뜩이라 그것만 생각하고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예상외의 인물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탓에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괜히 입을 뗐다가 영빈에게 꺼낼 말을 엄한 사람에게 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입이 조개처럼 딱 다물렸다. 망부석처럼 자리에 우뚝 서서 입을 다문 상혁에 재윤이 다가와 상혁아, 너 어디 아파? 하고 묻는데 때마침 ‘상혁이 벌써 왔어?’ 하고 영빈의 목소리가 탈의실 안쪽에서 크게 들렸다.


"네, 형!"


부러 기운차게 대답하면서 제 목소리에 당황한 재윤에게 저 완전 건강해요 하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이상혁 완전 고장 났네. 고장 났어. 누가 봐도 어색한 웃음소리와 입꼬리만 쭉 늘린 이상한 표정으로 재윤의 시선을 피해 탈의실로 향하던 상혁이 이제 막 앞치마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오던 영빈을 그대로 밀고 들어가 탈의실 문을 닫았다. 어어- 상혁아 형 옷 다 갈아입었는데? 영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상혁이 그 앞에서 끙끙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발을 동동 굴렀다.


"형."

"응?"


"그, 어떻게 해요?"


"뭘?"



그으, 그거 ... ... 섹스요.


...


말은 뱉었는데 한참이나 돌아오는 답이 없어서 숙였던 고개를 슬금 들어 올린 상혁이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영빈의 동그란 눈에 얼굴을 화르르 붉혔다. 아, 뜬금없이 아침부터 얼굴 보자마자 섹스 타령이라니 이건 제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라서 갑자기 꾹꾹 눌러 놓은 부끄러움이 저 아래서부터 치솟았다. 발바닥이 간지러운 느낌에 툭툭 바닥에 신발코를 누르며 아침부터 죄송해요. 중얼거리는데 영빈이 이 상황을 인식하려는 듯 조금 멍한 느낌으로 상혁을 바라보다가 상혁의 팔을 콕콕 찔렀다. 형 봐봐 상혁아.


"뭘 어떻게 하냐고 묻는 건데?"

"네?"


"준비를? 과정을? 처리를?"


"아…. 음…."


전부 다요.


상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영빈에게 모르겠다는 듯 울상을 해 보였다. 뭘 알아보고 왔어야 했나? 그러나 이상혁에겐 그 뭔가를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영빈밖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인성이 형한테 물어볼 순 없잖아요. 상혁은 차마 더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주눅이 든 강아지처럼 몸을 비비 꼬았다. 그에 반해 뭔가를 곰곰이 생각 중이던 영빈은 그냥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게 그나마 안심이 돼서 불고구마 같이 타오르던 상혁의 얼굴이 어느새 빠르게 제 색을 되찾고 있었다.


영빈은 문밖에 멀뚱거리니 서 있을 재윤을 떠올리며 시간을 끌면 재윤이 이 상황에 끼게 될지도 모르니 빨리 알려주는 게 났겠다 결론을 내리곤 제 라커룸을 열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상혁아 이거. 툭 상혁의 손바닥 안에 작은 비닐 파우치를 올려놓은 영빈이 가방을 정리하고 라커룸을 닫으며 얼이 빠져있는 상혁의 손을 손수 말아 주었다. 이건 준비물이고, 과정은 본능에 맡겨, 처리는 김인성이 해 주겠지.


"다음 주 월요일이 정기휴일이지? 그럼 일요일에 해. 너 처음이면 다음 날 좀 힘들 테니까."

"아…."

"아니다, 날짜를 내가 정해 주는 건 좀 오버고. 너 좋을 때 편하게 하라는 말이지 나는. 아무튼, 준비는 최대한 길게. 그리고 오래 하는 게 좋아."

"아니 형, 이게 뭐…."


이거 핑거돔. 젤이랑 같이 써. 어디에 쓰는지는 그냥 손가락에 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 화이팅!


영빈은 주먹까지 불끈 쥐고 상혁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탈의실을 나가려다 말고 아! 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와 라커룸을 뒤졌다. 이재윤, 깔끔하게 박힌 이름 석 자가 떡하니 보이는데도 참 거리낌 없이 남의 라커룸을 열어 재윤의 가방까지 뒤지던 영빈이 한참이나 부스럭거리며 뭘 찾더니 오! 소리와 함께 이번에도 상혁에게 두 개의 물건을 건넸다. 아직도 영빈이 건네준 물건에 넋이 나간 상혁의 손 위에는 척 보면 누구나 무엇인지 알 수 있지만, 상혁이 스무 해가 넘도록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콘돔, 이랑 핫... 젤..."

"핫젤 그거 좋더라. 열나니까 덜 아픈 거 같고."


아….


어디에 열이 나고 어디가 아픈데요?


한층 더 영혼이 날아간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아…. 탄식을 지른 상혁의 턱을 친히 올려 입을 다물게 만든 영빈이 상혁의 어깨를 탁탁 털어주며 형 이제 나가도 되지? 나 여기 좀 더 있으면 이재윤 들어 올지도 몰라. 하고 세상 침착하게 말했다. 끼익 끼익 녹슨 깡통 로봇처럼 버겁게 고개를 끄덕인 상혁에게 살랑살랑 손을 흔든 영빈이 탈의실 문을 열자마자 재윤을 불렀다.


재윤아 나 앞치마 리본 묶어줘!


***



좌불안석. 상혁의 상태는 딱 그 네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상혁에게 인성의 시선이 고정되었기 때문도 있었고, 아침에 영빈에게 받은 낯선 준비물 네 개가 제 코트 주머니 안에 고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다 틈만 나면 재윤이 찾아와 아침에 영빈이 형이랑 뭐 했는데? 하고 은근슬쩍 묻기까지 하니 온통 정신이 별나라에 가 있는 수준이었다.


저를 향한 인성의 시선을 외면하고 잠시 카페 일에만 집중하자며 일부러 홀에 나가 분주하게 움직이던 상혁에게 일이 터진 건 그때였다. 오늘따라 붐비는 매장 안에 손님과 더불어 가벼운 외투와 짐들이 놓여 있는 의자가 많았고 이제 막 음료를 픽업 대에서 들고 자리로 돌아오던 손님의 발이 바닥에 늘어진 숄더백의 가방끈에 걸려 버렸다. 손님은 그대로 넘어졌고 막 그 옆에서 테이블을 치우고 돌아서던 상혁의 팔을 잡아챈 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꺄악! 하는 여자 손님의 짧은 비명과 함께 홀 안에 쨍그랑 소리가 울렸고 홀 전용 머그잔이 깨지면서 그대로 상혁이 그 위로 넘어졌다. 너무 놀라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한 상혁이 그 와중에도 넘어지던 손님을 제 팔로 단단하게 잡고 머그잔과 먼 쪽으로 힘을 주자 반동으로 반대로 넘어진 손님이 사태를 파악하곤 헉 소리를 내며 괜찮으세요?! 하고 먼저 물었다.


다행히 머그잔이 깨진 파편 위로 완전하게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는 바람에 자잘한 상처에 파편이 박혀 피가 제법 베어 나왔다. 아, 저 괜찮아요. 진짜예요. 정말 괜찮습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어떡해, 어떡해만 중얼거리던 손님은 결국 상혁의 손바닥에서 피가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눈물을 터뜨렸고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인성과 영빈에 상혁은 난감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상혁아!! 너 괜찮아?”

“아, 나 진짜 괜찮아요. 그냥 조금 베인 건데 손님이 너무 놀라셔서.”


괜찮다고 누차 말하는 상혁의 목소리에도 인성의 표정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당황한 손님은 함께 온 일행과 영빈이 잘 달래 상혁에게 거듭 사과를 전하며 병원비가 생기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남긴 채 돌아갔고 홀에 남은 잔해들을 영빈이 치울동안 상혁은 인성의 손에 잡혀 직원 탈의실로 옮겨졌다.


“형 나 진짜 괜찮아요. 많이 아프지도 않고, 별로….”


“안 물어본다고 했는데.”

“네?”

“너한테 안 물어본다고 했는데, 내가 계속 눈치 줬잖아. 그거 때문에 나 피하다가 너 이렇게 된 거잖아.”


탈의실에 비치되어있는 구급상자를 꺼내와 상혁의 손에 박힌 사기 파편을 핀셋으로 살살 빼내던 인성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누가 봐도 화가 난 얼굴로 입술을 꽉 물었다 놓았다. 또 처음 듣는 목소리. 낮게 깔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울컥 차오르는 화를 눌러 삼킨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더 움츠러든 상혁이 살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요. 응?


“형 때문에 다친 거 아니고 그냥 사고예요. 손님이 부주의했고 나도 제대로 못 봤고.”

“상혁아 그냥, 나한테 말해 주면 안 될까? 뭐든 내가 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너도 나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건 알아. 머리로는 알겠는데 자꾸 더 알고 싶어서 눈이 따라가는 걸 어떻게 해. 이게 너무 집착이고 소유욕일까 봐 나도 안 그러고 싶은데, 못 하겠어.


소독약을 탈지면에 묻혀 톡톡 상처 위를 두드린 인성이 커다란 위생 밴드를 상혁의 손바닥 위에 붙이고 꾹 악수하듯 그 위로 제 손을 겹쳐 잡았다 놓으면서 밴드 위로 입을 맞췄다.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또 귀부터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남은 손으로 한쪽 귀를 꼭 가린 상혁이 반대편 귀는 가리지 못해 안절부절 인성이 잡고 있는 제 손만 응시했다.


“말, 해요. 할게요. 근데 지금 말고 집에 가서 할래요.”


제 손을 잡은 인성의 손을 살살 흔들면서 여전히 좁혀진 인성의 미간을 엄지로 펴 준 상혁이 이제 그만 표정 풀어요. 나 무서워. 하고 인성을 달랬다. 내내 심각하던 인성의 표정이 상혁의 무섭다는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았다. 굳어진 얼굴 근육을 풀고 잡고 있던 손을 당겨 상혁의 품에 꼭 안은 인성이 상혁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다.


“상혁아.”

“응?‘

”형 너무 못났지?“


“누가요? 나는 형만큼 멋있는 사람 인생 살면서 만나 본 역사가 없어요.”


너스레를 떨며 제가 다쳤을 때 저만큼 놀랐을 인성의 등을 토닥여준 상혁이 저 역시 인성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낮게 웃었다. 근데 진짜 진심이에요. 형만큼 멋진 사람은 내 인생에 다신 없을 거야. 조그맣게 말하는 상혁의 목소리가 인성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으면서. 투덜거리는 인성의 등허리를 주먹으로 콩, 아프지 않게 때린 상혁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며 인성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이로 꾹 물었다 놓았다. 상혁아 강아지야? 너 이갈이 해? 시무룩해져서 우울했던 게 방금이면서 인성은 또 상혁의 아기 짓에 바보처럼 허허 웃었다.



상혁이 손도 다쳤는데 오늘은 마감 좀 빨리 치자, 오후가 좀 지나고 손님이 줄어들어 매장이 한산해 졌을 즈음 영빈이 말했다. 카운터에서 매출을 점검 중이던 상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세상 단호하게 가서 쉬어. 하고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종일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상혁아, 옷 갈아입고 와. 오늘 마감은 재윤이랑 내가 할 테니까 인성이랑 먼저 들어가.”

“형, 저 진짜 멀쩡해요. 이거 그냥 좀 긁힌 거고 피만 좀 난 건데….”


상혁이 정말 괜찮다는 듯 영빈의 눈앞으로 밴드가 붙은 손바닥을 쭉 펴서 흔드는데 어느새 뒤로 다가온 인성이 상혁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고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쳐 그대로 깍지를 껴 잡아 눌렀다. 그럼 오늘은 내가 그냥 땡땡이치고 싶은 거로 하자. 상혁의 다친 손을 아프지 않게 조물딱 대던 인성이 그럼 됐지? 하고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데없이 백허그를 당하고 손깍지를 낀 상혁이 헉 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 모습에 영빈이 빵 터져버려서 상혁의 표정을 미처 보지 못한 인성이 왜 웃어? 하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였다.


“진짜 연애 귀엽게 한다, 너네.”


눈주름이 접힐 정도로 깔깔 웃은 영빈이 여전히 빨개진 얼굴로 얼어 있는 상혁의 허리에서 앞치마 리본을 풀어주며 탈의실 쪽으로 아이를 밀었다. 얼른 옷 갈아입고 와. 등을 떠밀자 그제야 상혁이 종종종 탈의실로 모습을 감췄다. 그러고 나면 영빈은 여전히 눈으로 상혁의 동그란 뒤통수를 쫓던 인성을 툭툭 치며 잠깐 얘기 좀 하자. 하고 따로 불렀다.


“뭔데?”

“상혁이가 어떻게 하냐고 묻던데?”

“뭘?”

“이런 건 솔직히 연인 간의 프라이버시라서 나도 지켜주고 싶은데, 애가 처음이니까 나도 너무 걱정돼서.”

“그러니까 뭘?”


“너 콘돔 사. 내가 하나 주긴 했는데 한 번 불붙으면 당분간은 눈 마주칠 때마다 하게 된다.”


어? 상혁이가 뭘 물었다고?


못 들은 것도 아닌데 멍청하게 되묻는 인성에게 이런 걸 두 번 말할 재주는 없고, 하면서 쿨하게 제 할 말만 마친 영빈이 뒤를 돌아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건투를 빈다. 평온한 영빈의 말 뒤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상혁이 형, 저 나왔어요. 하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란 인성이 어어…. 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가자 상혁아. 집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이른 퇴근에 상혁은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인성의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나서면서도 흥얼흥얼 엘리베이터를 잡고 이제 막 주차장 로비로 들어오는 인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하고 물으니까 오랜만에 형이랑 저녁에도 놀 생각에 신나는 거라면서 예쁘게도 웃었다. 최근엔 날이 많이 풀리는 바람에 매장에 손님이 늘어서 퇴근이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긴 하다. 우리 일찍 퇴근하는 거 오랜만이네. 그치? 하고 물으니까 상혁이 사장님이 너무 악덕이에요. 하고 장난꾸러기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공칠일이. 상혁이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근데 이런 거 원래 생일로 해 놓으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도 종알종알 쉴새 없이 떠드는 아이의 뒤통수가 오늘따라 동그랗고 예뻐서 저도 모르게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살살 쓸어내린 인성이 그런가? 예전부터 그냥 계속 내 생일로 해 놓고 귀찮아서 안 바꾼 건데. 하고 웃었다.


“상혁아.”

“응?”

“형한테 할 말 있지 않아?”

“아…. 그... 저녁 먹고.”

“형은 지금 듣고 싶은데.”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인성이 거실로 들어가려던 상혁을 붙잡고 눈을 맞췄다. 퇴근 전에 영빈이 한 말이 자꾸만 떠 올라서 사실은 상혁이 떠드는 말에 하나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빨리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붙잡고 묻고 싶어서. 그런 건 왜 물었는데, 형은 좀 나쁜 어른이라서 상혁아. 그게 너무, 네가 그런 걸 물었다고 하니까, 너무 참기가 힘든데.


팔뚝을 잡았던 손을 내려 상혁과 손을 마주 잡은 인성이 그대로 품 안에 상혁을 안고 뺨에 쪽 가볍게 입을 맞췄다. ...형? 하고 묻는 상혁에게 말없이 등을 느리게 쓸어주는데 힐끗 바라본 인성의 귓불이 터질 듯이 불타고 있어서 상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꼭, 내가 뭐라고 말할지 아는 사람처럼. 덩달아 부끄러워진 상혁이 두 손으로 인성의 허리춤을 꼭 잡고 가슴팍에 이마를 대자 인성이 아주 조그맣고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키스하고 싶다. 고.


“상혁아.”

“...응?”


인성은 불러 놓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현관의 센서 등이 한참이나 움직임이 없는 두 사람 덕분에 깜빡, 하고 꺼졌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건 인성의 숨소리, 그리고 상혁의 숨소리뿐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묘해서 숨을 꾹꾹 참던 상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데 다시 들이마시는 숨결에 인성의 입술이 딸려왔다.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닿은 입술에 상혁이 눈을 감고 인성의 목에 팔을 감았다. 어떡해, 어떡하지?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인 탓에 익숙해진 입맞춤에도 들숨 날숨이 어지럽게 섞였다.


신발 뒤축을 구겨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현관에서 거실로 향하는 벽에 상혁을 밀어붙인 인성이 고개를 틀어 더 깊게 입을 맞추자 상혁이 벽에 뒤통수를 콩박고 으음... 작게 신음했다. 인성이 미안하다는 듯이 동그란 뒤통수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감싸 몇 번 쓰다듬자 그 손을 잡아 제 뺨을 쥐게 한 상혁이 눈을 파르르 떨며 입술이 잠깐 떨어진 사이에 말을 쏟았다.


“형, 형 나, 나, 할 말, 있어요.”

“말해.”


그 짧은 순간도 떨어지기가 싫어서 상혁의 도톰한 아랫입술에 꾹 잇자국을 낸 인성이 차오르는 숨에 뚝뚝 끊어지는 상혁의 말을 입속으로 삼키며 대답했다. 턱선을 따라 쪽쪽 민망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움직이던 인성이 상혁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으로 코트의 단추를 풀고 허리를 단단하게 잡아 번쩍 들어 올리면 깜짝 놀란 상혁이 앞으로 쏟아지며 인성의 허리에 두 다리를 감싸고 목을 붙잡아 코알라처럼 매달렸다.


말해 상혁아.


상혁의 턱 가에 난 점에 꾹 입을 맞추고 기다리겠다는 듯이 말하는 인성의 목소리가 너무 달아서 상혁은 인성에게 답싹 매달린 채로 제 코트 주머니를 뒤져 영빈이 준 준비물을 한 움큼 집어 인성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홀린 듯이 대답했다.


“형, 나랑 자요. 형이랑 자고 싶어요.”



시선이 맞닿고, 입술이 부딪히고, 혀가 엉켰다. 느리게 미끄러지는 혀 사이로 젖은 입술이 외설적인 소리를 냈다. 상혁을 안고 그대로 침실로 들어온 인성은 침대에 앉아 제 무릎 위에 상혁을 앉히고 코트를 벗기고 티셔츠를 끌어 올렸다. 인성의 뺨을 양손으로 쥐고 있다가 그대로 만세를 하며 옷을 벗은 상혁이 맨살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부르르 떨며 인성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추워 상혁아?”

“형 제발.”

“응?”


“내 이름 좀 그만 불러요.”


형이 그렇게 부를 때마다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목덜미에 닿아오는 상혁의 팔에서 미적지근한 온기가 전해졌다. 인성은 조금 소리 내어 웃으며 손으로 상혁의 맨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상혁을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히면서 목덜미를 받치고 있던 손을 올려 말랑한 뺨을 한 번, 계속 만지고 싶던 도톰한 아랫입술을 한 번 스치고 그대로 가슴을 쓸며 허리께로 내려와 치골을 지분거렸다.


상혁아. 나는 네 이름 부를 때마다 좋아서 미치겠어.


이마에 입을 맞춘 인성이 씨익 웃었다.

형, 심쿵사는 이런 건가 봐요. 상혁이 먼저 인성의 입에 입을 맞췄다.


***



짧지 않은 섹스가 끝나면 여운이 긴 후희는 서로를 품에 안은 채로 듬뿍 느꼈다. 땀에 젖은 몸도, 달아오른 맨살도 자꾸만 서로를 찾는 손도 하나도 내버려 두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스치고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까무룩 잠이 오는지 깜빡이는 눈이 느려지는 상혁에게 졸리면 자 상혁아, 형이 다 치울게. 하면서 관자놀이에 콩콩 입술을 부딪힌 인성이 상혁의 턱 끝까지 이불을 덮어 가슴팍을 토닥였다.


“잘 자. 상혁아.”

“으응...”


잘 자라는 말에 대답인지 투정인지 모를 소리를 흘린 상혁이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인성의 시선을 느끼며 눈도 뜨지 못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형, 사랑해...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그 말이 너무 벅차서 인성은 또 울먹이며 보이지도 않을 상혁을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젖은 얼굴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상혁의 손을 잡고 손끝마다, 마디마다, 손바닥 온 곳곳에 입을 맞췄다. 사랑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관계에 사랑을 듬뿍 받는 건 저인 것 같아 심장이 간질거렸다. 사랑해. 사랑해 상혁아. 어쩌다가 너를 만나서, 어떻게 이런 사이가 됐을까.


백 마디를 더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사랑해 밖에 없어서. 인성에게는 그게 조금, 아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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