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이

어떤 사이 09

Isn't I pretty?

린당


인성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세 식구가 모두 모여 아침을 먹는 건 드문 일이었다. 입시를 앞둔 고3이라 인성이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탓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가진 기업의 총수라는 자리도, 어머니가 가진 교수라는 직함도 그냥 얻어지는 것들은 아니었다. 두 분은 누군가의 남편, 아내 그리고 부모라는 타이틀 이전에 그저 자신의 커리어가 조금 더 소중하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사랑 없는 결혼을 했냐고 물으면 부부는 온몸으로 부정하며 펄쩍 뛰었다. 전에 없는 불같은 연애를 했고 여전히도 열렬히 사랑하는 중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다만, 나 자신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거라고, 그것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서로를 만나 행복하다고.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던 두 사람의 삶에 누구보다 소중한 아이가 태어났고 너는 부디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기를. 사랑이 충만한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부족함이 없이 예쁘게만 자라기를. 부부는 두 사람의 아이가 사랑받는 아이가 되라는 뜻으로 어질 인에 성품 성, 인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남자가 좋아요.


수능이 막 끝난 다음 날이었다. 고3이라는 긴긴 압박감을 벗어던진 개운한 얼굴로 인성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고 오후 느지막이 세 식구가 모두 모인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홍교수는 오후에 있는 강의 자료를 식사 자리 한편에 놓아두고 검토 중이었고 김대표는 조간신문의 정치면을 읽던 중이었다.


뭐? 뭐라고 했니 지금?


홍교수의 물음 뒤로 정적이 흐르는 사이, 아이는 평온한 얼굴로 식사를 시작했다. 앳된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부모가 보기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한들 제 속으로 낳아 19년을 끼고 산 제 자식인데 그 떨림을 모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진심이었다.


홍교수는 손에 들고 있는 연구 자료를 내려놓고 인성과 바로 마주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 학기에도 수백 명의 학생을 가르치면서 언제나 개인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며 그 어느 것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비난받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 것이 내 아들이라면. 그녀는 그 짧은 사이 꽤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어머니와 교육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부모로서, 인성이 가려는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많은 이들이 걸었고 모두 저마다의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온전한 길을 걸어도 상처가 없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부모 된 자가 부러 더 위험한 길을 가겠다는 아이를 말리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거듭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사이 김대표가 섣불리 말을 던졌다.


어쩌다가?


아차 싶은 발언이었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다만 부부는 정말 무심코 던진 그 질문에 애써 괜찮은 척하던 인성이 수저를 내려놓자 정말 아차 싶었다. 방금 한 말은 잊으렴. 김대표는 곧바로 사과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준 부모였을까. 우리가 저 아이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나? 아이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어려운 길이지 잘못된 길이 아니었다. 서로 당황했지만, 인성이 상처받지 않도록 섣부른 말보다 길지 않은 침묵을 유지했다.


홍교수는 엄마보다 대외적으로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했다. 아이도 장난삼아 엄마 대신 그녀를 홍교수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홍교수는 인류문화의 뼈대가 되는 사회학이 전공이었고 본인의 커리어에 큰 자부심과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좀 더 이 상황을 객관화하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부부는 본인들이 가정에 있어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인성이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후회한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고 대신 인성이 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응원하고 지지해주기로 서로에게 약속했다. 부족한 부모의 사랑 대신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들로 아이를 응원하겠다고.


‘그러나 인간은 반드시 애정이 필요한 존재다.’


홍교수의 사회학 강의는 늘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 홍교수와 김대표는 아들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구나. 네가 좋다면, 우린 상관없단다.


영겁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인성은 마침내 부모님의 대답 끝에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의 품에 온전히 안겨 펑펑 우는 인성에게 홍교수는 말했다. 무서웠니, 우리 아들? 엄마, 아빠는 네가 뭘 하든 그저 네 편이란다. 인성아.



***


“내가 돌려 말하는 법을 몰라요. 자꾸 그렇게 돌려 말하다 보면 진심이 왜곡되거든.”

“아...”

“우리 인성이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이 어려워요?”

“그게, 그게 아니라...”

“너무, 오랜만에 봤어요. 그렇게 예쁘게 웃는 거.”

“네?”


“상혁씨 얘길 하면서 얼굴에 아주 꽃이 피었더라고. 나는 예쁜 걸 좋아하거든. 근데 우리 아들 본 중에 오늘 제일 예쁘게 웃는 거야. 그래서 아, 이건 답이 하나밖에 없는 데 싶었어요. 이 녀석이 연애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내가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숨기지도 않고 대답하는 인성이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상혁씨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서 물 따귀와 김치 싸대기가 오가는 막장 드라마를 재생 중이었는데, 눈앞에 이 소녀 같은 어머님은 전혀 그런 장르와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생각보다 개구진 표정을 하며 코를 찡긋하셨다. 상혁의 대답을 기다리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어른의 표정. 아, 저 표정. 인성이 형이랑 똑같다. 그 익숙한 얼굴에 잔뜩 굳어 있던 상혁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나랑 그이는, 그냥 인성이 편을 해 주기로 했어요. 긴장하지 말라는 소리예요. 나는 해코지를 하러 온 것도, 돈 봉투를 내밀러 온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 아들을 사랑해주는 고마운 사람에게 어떤,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왔어요.”


감사라니. 상혁은 마주 잡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이런 상황도 있는 거구나. 이런 부모님도 있는 거구나. 무조건 자식 편에 서주는, 그런 사람도 있는 거구나. 상혁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뜨며 꾹꾹 참아 내는 울음에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다.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어린 날의 제 엄마도 곧잘 그런 말을 했었다. 엄마는 늘 상혁이 편이지, 하는 말.


잠깐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린 상혁의 눈시울이 붉었다. 홍교수는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찬찬히 그 어린 얼굴을 살폈다. 상혁은 도톰한 아랫입술을 꽤 못살게 굴었다. 꾹꾹 앞니로 씹었다가 입안에 쏙 넣었다가 혀를 내어 침을 축였다가 끝내는 삐죽 빼물고 할 말을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홍교수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웃어 보였다. 어쩐지 제 아들이 왜 그렇게나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상혁은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제 앞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홍교수를 보고는 기꺼이 입을 열었다.


“웃을 때요, 닮으셨어요.”


“나랑 인성이가요?”

“네, 실은 처음 뵀을 때부터 너무 낯이 있어서 신기했는데, 진짜 어머니라고 하셔서 너무 놀라는 바람에 제가 초면에 창피하게 굴었어요. 죄송해요.”

“어머나, 죄송하긴. 내가 너무 갑자기 찾아온 건데. 나는 상혁씨가 너무 귀여웠는데, 나 좀 무서웠겠다. 그죠?”


숨겨둔 의중 따위는 없다는 듯 가벼운 홍교수의 대답에 상혁은 말 없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홍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하려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상혁은 조금 난감한 얼굴을 해 보였다. 김인성이 좋은 이유라니, 하나부터 열까지 안 좋은 게 없는 사람인데. 그냥, 그냥 지금은 제게 전부인 사람인데.


“어떤 게 좋았냐고 물으시면, 그냥 형은 저한테 구원 같았어요.”

“구원?”


“내가 사랑받아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줬고, 울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알려 줬고. 어떤 일이든 후회하지 않게 해 줬고. 형 옆에 있으면, 형만 있으면. 살아 있어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거창한 말이었을까. 혹시 제가 너무 인성에게 어리광을 피운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어 상혁은 말을 마치고 홍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상혁의 말에 살랑살랑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사실이었다. 아직 제가 너무 어려서, 그런 가당찮은 이유가 아니었다. 인성은 저를 살렸다. 그날, 그때. 이 카페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여기서 인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상혁은 언제고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우리 인성이가, 상혁씨를 살렸나요?”

“...살렸어요. 죽어가는 저를, 온 마음으로 살렸어요.”


상혁은 1초도 망설임 없이 답했고 홍교수는 미소로 화답하며 상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월이 조금 느껴지는 얇고 고운 손이었다. 상혁은 그 손을 보고 생각했다. 손을 쥐여주고 싶다고. 손을 달라면 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 어느 날 인성의 손에 제 손을 쥐여주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형이 이렇게 손을 내밀면, 저는 그냥 그 손을 잡고.”

“잡고?”

“사랑받고 싶다고,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 이미 형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저는.


상혁은 제 앞에 내민 홍교수의 손에 제 손을 쥐여주었다. 그리곤 뚝뚝 흐르는 눈물을 미처 닦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울보가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달달 덜리는 어린 등을 홍교수가 남은 손으로 토닥토닥 쓸어주는데 카운터에서도 이곳만 줄곧 보고 있었는지 인성이 어느새 상혁의 곁으로 달려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입을 뻐끔뻐끔 붕어처럼 붙였다 떼더니 금세 무릎을 굽히고 앉아 상혁의 숙인 얼굴을 아래에서 확인했다.


“상혁아, 울어? 왜 울어? 응?”


혹시, 설마. 제 어머니가 무슨 모진 말을 했을까 싶어서 전전긍긍 울상을 지은 인성은 서럽게 우는 상혁의 모습에 제가 더 아픈 표정을 지었다. 테이블 위에 마주 잡은 손이 축복의 의미가 아니라 단념하라는 뜻 일까 봐. 인성은 두 사람의 손과 상혁의 등을 쓰다듬는 제 어머니의 다른 손, 그리고 울고 있는 상혁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렇게 좋을까. 저와 김대표도 저런 연애를 했었나 싶어 홍교수는 참지 못하고 포스스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인성은 안절부절못했고 상혁은 유니폼 소매를 끌어와 얼굴을 슥슥 닦았다. 그 와중에도 상혁아 그렇게 하면 얼굴 쓸려서 아파, 하며 제 손으로 아이의 손을 치우고 얼굴을 살살 닦아주는 인성은 꽤 볼만했다. 제 아들이지만 저런 모습은 초면이었다.


“아들, 엄마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응?”

“듣고 싶은 말이 많은데, 엄마가 너무 울려버려서. 나중에 천천히 들어야겠다.”


상혁씨, 나중에 또 커피 친구 해 줄 거죠? 그렇게 묻는 홍교수의 말에 상혁의 얼른 고개를 번쩍 들어 눈물이 얼룩진 퉁퉁 부은 얼굴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펑펑 운 탓에 속눈썹 사이사이 맺힌 눈물이 반짝거리는 어린 얼굴이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홍교수는 손을 뻗어 상혁의 여린 눈 밑을 손으로 살짝 훑어주었다.


“우리 인성이, 많이 사랑해줘요. 엄마로서 내가 부탁할게요. 우리가 많이 외롭게 했어요, 이 녀석을.”


홍교수는 잡고 있던 상혁의 손에 꼭 힘을 주었다가 살살 놓고는 인성의 손을 끌어 그 위에 얹어 주었다. 제 말에 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상혁에게 마음을 다해 기쁘게 웃어 보인 홍교수의 얼굴이 인성과 똑 닮아 있었다.


카페를 나서는 홍교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가려다 말고 상혁의 얼굴을 살살 문지르고 있는 인성의 어깨를 꼭 잡았다 놓은 홍교수는 두 사람에게 뭐라뭐라 소곤소곤 속삭이고는 벌게진 얼굴의 두 사람에게 여유 있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봐요- 또 올게 아들, 간결한 인사는 어딘지 모르게 상큼하기까지 했다.


콘돔은 꼭 해, 그게 위생에 좋데.


인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상혁의 귀를 막았지만, 상혁의 얼굴은 이미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엄마!! 인성이 홍교수의 뒤로 아무리 소리를 쳐봤자 유리문 밖으로 사뿐사뿐 걸어가는 홍교수의 모습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


왜 그렇게 울었어?

그날 저녁 침대에 상혁과 나란히 누운 인성이 상혁의 머리 아래 제 팔을 끼워 넣고 물었다. 인성의 팔베개를 베고 품 안에 얼굴을 콕 박은 상혁이 허리를 감싸 안아 더 깊게 안기며 배시시 웃었다. 좋은 분이라서요. 어머님이 좋은 분이라서 형이 이렇게 따뜻한가 봐요. 진짜 좋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상혁이 광대가 볼록하도록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인성도 따라 웃었다.


“근데 형은...”

“응?”

“형은 막... 그...”

“말해 상혁아.”


또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낑낑거리기에 얼굴을 내려 상혁을 보려하자 상혁이 보지 말라는 듯 인성의 턱을 손으로 밀어 올렸다. 으아, 상혁아 형 아파아- 별로 힘도 안 줬는데 턱을 치켜든 인성이 징징거리니까 헉 소리를 낸 상혁이 얼른 손을 떼고 미안...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겁 많아서 우리 애기 앞에선 장난도 못 치겠다. 킥킥거리며 웃은 인성이 얼떨결에 얼굴을 든 상혁과 눈을 맞추며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고 다시 물었다. 김인성의 애정을 듬뿍 담은 눈은 언제나 상혁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요새는 안 하고 싶어요?”


정적이 흘렀다. 인성은 속으로 조금 어머니의 마지막 멘트를 원망했다. 어? 어어…. 어중간하게 대답하는 인성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허공을 배회했다. 주어는 쏙 빠진 말이었지만 뭘 말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런데 그 어중간한 대답이 하필이면 어어…. 인 바람에 상혁은 조금 심각해졌다. 인성에게는 대답에 대한 회피였으나 상혁에게는 조심스러운 긍정 같이 들렸으니까. 왜요? 왜 안 하고 싶어요?


“나 이제 안 예뻐요?”


심각한 표정을 한 상혁이 제가 밀지도 않았는데 시선을 피하느라 높이 들어 올려진 인성의 턱을 양손으로 잡아 내렸다. 반짝거리는 커다란 눈이 인성을 가득 담고 울망 거리고 있었다. 안 예쁘냐고? 인성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가, 애기야. 어떻게 네가 안 예쁠 수가 있어. 인성은 대답 없이 상혁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올리고 그대로 키스했다. 아랫입술을 쪽 물고 고개를 비틀어 더 깊게 입을 맞추면 이젠 키스 정도는 익숙해진 상혁이 곧잘 입을 벌리고 혀를 얽었다. 아직도 인성의 얼굴을 감싼 상혁의 손바닥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뒤트는 인성의 턱뼈가 꿈틀거리는 것까지 전부 느껴졌다.


이상해. 상혁은 평소보다 깊은 키스에 쉬이 눈을 뜨지 못하고 속눈썹만 파르르 떨었다. 쪽쪽 거리는 입술소리가 귓가에 너무 크게 들려서 그대로 손을 움직여 인성의 목을 감싸 안고 축 늘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혁의 상박을 천천히 내리누르고 허리께에 손을 댄 인성이 타액이 묻은 입술을 그대로 옮겨 상혁의 턱을 따라 목까지 미끄러졌다. 상혁아, 너 여기 점 있다. 가빠진 호흡 그대로 속삭이듯 말하는 인성의 목소리가 낮았다. 잠에 취해 저를 찾던 새벽의 목소리보다 허스키해서 상혁은 그대로 눈을 더 질끈 감았다.


인성은 상혁의 턱 끝에 콕 박힌 점 위로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귀여워. 그렇게 말하며 입술 산 위에 조그맣게 박힌 점 위로 다시 버드 키스를 남기고 평소에 신기했던 왼쪽 귀 중앙에 박힌 점에도 쪽 입을 맞췄다. 입술이 살에 부딫히는 소리가 고막에 그대로 닿아 선명했다.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신 상혁이 인성의 어깨를 콩콩 두드렸다. 이상해요오. 말 꼬리를 늘리는 상혁이 귀여워서 반대쪽 귓바퀴를 찾아 살짝 물었다 놓은 인성이 너 여기도 점 있네? 하며 놀리듯 그 위로 혀로 슥 훑었다.


“혀엉...”


“안 예쁘냐고 상혁아?”


“아니이.. 아, 내 말은...”

“형은 참느라고 죽어. 근데 너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소리는 제발 하지 마. 형 진짜 울고 싶어. 인성은 상혁의 허리를 단단히 잡은 손으로 놀라서 숨을 들이마신 상혁의 가슴팍을 토닥였다. 상혁아, 형은 억지로 절대 안 해. 근데 늘 하고 싶어.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늘 네가 날 떨리게 할 만큼 예쁘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그런 말로 서운해하지 마. 아직도 꾹 감은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있는 상혁이 안쓰럽고 귀여워서 마지막으로 이마에 입을 맞춘 인성이 우리 이제 자자. 하고 상혁의 옆에 몸을 눕혔다. 고작 이런 거로도 놀라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우리 애기 도대체 언제 다 크나. 인성은 상혁의 뺨을 둥글리듯 쓰다듬고는 잘자 상혁아. 하고 속삭이며 무드등을 껐다.


토닥토닥, 한참이나 상혁의 가슴팍을 일정하게 두드리던 인성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면 그때까지 꼭 감은 눈으로 작은 숨을 색색 쉬던 상혁이 눈을 떴다. 깜빡깜빡 어둠에 익숙해지려 바쁘게 깜빡이던 눈이 저를 향한 채로 모로 잠든 인성을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천장을 향해 눈을 돌렸다.


“미쳤다... 미쳤어 이상혁.”


인성이 몇 번이나 물고 빠는 바람에 통통해진 아랫입술을 앞니로 꾹꾹 물던 상혁이 여전히 벌게진 얼굴로 방 안이 어두워서 다행이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잠이와요, 형은?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잠이 온다고? 상혁은 좀 억울했다.


동했다. 동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제 몸을 만지는 인성의 손은 끈적하지도 않았고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히 일부러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를 크게 낸다는 것도 알았다. 처음엔 얄밉다고 생각했고, 다음은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짙어지는 키스와 제 온 얼굴을 문지르는 입술에 심장이 뻐근할 정도로 뛴다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게 가슴팍보다 아랫배가 먼저 당겼다. 말도 안 될 건 뭐야. 김인성이 이상혁을 보고 흥분을 하는 마당에 여지껏 인성을 그런 식으로 인식해 본 적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제가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인성에게 그게 지금인 것 같아요. 라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워, 부끄러워서 못 하겠어. 힝.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지은 상혁이 불편해진 아래를 인식하며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제 가슴팍 위에 얹은 인성의 손을 천천히 옆으로 치워두고 마치 나무늘보 움직이듯 침대 밖을 벗어나던 상혁이 갑자기 비어버린 옆자리에 편한 자세를 잡으려 뒤척이는 인성을 보며 정지화면처럼 멈춰 섰다.


제발, 제발 그대로 잠들어라. 제발.


눈물이 찔끔 날만큼 낯선 기분에 온몸에 털이 다 곤두서는 기분으로 안방을 빠져나온 상혁이 빠르게 화장실로 도망쳤다. 오늘은 다용도실에 자야겠다. 마른세수를 하며 변기 뚜껑을 올린 상혁이 울상을 짓고 다리를 동동거렸다.



***


간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인성이 꽤 환해 보이는 얼굴로 거실로 나와 상혁을 찾았다. 웬일로 늦잠을 잔 인성과 달리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상혁은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오, 상혁이가 해 주는 거면 오랜만에 밥 먹겠네? 평소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는 게 요리에 서툰 인성이 탓에 늘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나 샐러드로 먹곤 했는데 오늘은 냄새부터 달랐다. 뭐 하는데? 된장찌개야? 큰 소리로 물으며 성큼성큼 걸어가 싱크대에서 분주한 상혁의 뒤에 바짝 붙어 허리를 감싸 안자 화들짝 놀란 상혁이 헉,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우당탕쿵탕 싱크대 안으로 놓쳤다.


“아, 미안. 놀랐어? 나 저기부터 소리 내면서 들어왔는데?”

“아니, 아... 그, 아 놀랐어. 소리 들었는데 갑자기...”

“갑자기 안아서 놀랐어?”


횡설수설하는 상혁이 수상했지만, 그냥 놀랐나 보다 싶어 귀여운 마음에 더 꼭 끌어안고 정수리에 소리 없이 콩콩 입술을 누르자 상혁이 부르르 떨면서 뒤를 돌아 인성을 밀어냈다. 형아, 밥 푸고 수저 놔요. 아침 먹고 얼른 출근해야지. 나 오늘 영빈이 형한테 커피 수업받는 날이야. 어어... 괜히 분주한 상혁에 힘없이 밀려난 인성이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상혁아 형한테 뭐 화났어? 하고 물으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데 귓바퀴가 빨갛다. 뭐지. 그 의문스러운 행동에 인성이 한발 뒤로 물러나 상혁이 시키는 대로 잠자코 그릇에 밥을 푸고 수저를 놓아두었다. 어느새 보기 좋은 모양으로 보글거리는 된짱 찌개를 가운데 두고 반찬을 꺼내 아침상을 뚝딱 차려낸 상혁이 잘 먹겠습니다. 크게 소리치더니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상혁아 천천히 먹어.”

“오늘, 영빈이 형이 빨리 나오라고 해서요.”

“그래?”

“응.”


그냥 단순히 시간이 급해서 그런 건가 싶다가도 밥을 먹으며 저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상혁에 인성이 젓가락을 들었다가 얌전히 끄트머리를 입에 물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게 하고 싶은 말은 웬만해서는 숨기는 법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인데 꽤 오래 눈을 피하며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진짜 말하지 않고 싶은 게 생긴 모양이었다. 모른 척해주기도 어렵게 허둥지둥하는 게 안쓰러워서 구태여 캐물을 생각도 없어진 인성이 밥을 뜬 상혁의 숟가락 위로 어머니가 보내주신 깻잎 반찬을 올려주며 골고루 먹으라고 그냥 한 번 웃어주었다.


“상혁아.”

“응?”

“안 물을게. 안 물어볼게. 천천히 좀 먹어. 그러다가 체하겠다.”


이상혁이 솔직할 생각이 없다고 김인성도 같이 모르는 척 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묻지 않는다고 말하자 급 시무룩해진 상혁이 우물우물 빵빵한 볼을 하고 음식을 씹다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거렸다.


형은 언제부터 이렇게 날 잘 알게 됐어? 왜 다 알아봐? 내가 숨기는 걸 어떻게 그렇게 다 눈치채? 모르는 척이 아니라 이런 건 좀 몰랐으면 좋겠어. 이런 건 어떻게 준비하는 거야? 그냥 마음의 준비만 하면 형이 다 알아서 해줘? 형은... 경험이 많겠지...? 꿀꺽, 삼켜지는 밥이 조금 버거워서 인성이 미리 따라 놓은 물을 벌컥벌컥 마신 상혁이 잘 먹었습니다. 외치고는 형 천천히 먹어. 나 먼저 가게 가요. 하면서 겉옷을 입고 현관으로 종종종 달려갔다.


물어볼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다. 영빈이 형, 오늘은 커피 말고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카페를 향하는 상혁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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